All or Nothing이다. 중간이 없다. 한 번 발생하면 과원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그만큼 치명적이다. 기후변화로 발생 예측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약제도 없다. 그저 예방과 조기 발견이 최상일 뿐이다.
사과나 배 같은 장미과 식물에 발생하는 치명적 세균성 질병 ‘과수화상병(Fire Blight)’ 얘기다. 마치 나무가 불에 탄 것처럼 잎과 줄기가 검게 변하며 말라죽는 증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법정 검역 병해충으로 지정되어 농가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질병이다. 발생 시 전체를 매몰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과수의 구제역’으로 불리우며 축산업의 구제역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렇듯 위세가 대단한 과수화상병이지만 최근 정부와 지자체의 예찰 및 방제 노력으로 그 발생영역이 감소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용인, 평택, 양주 등)를 비롯, 충북(충주, 제천 등), 충남(천안 등) 등 기존 발생지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발병이 이어지고 있으나 확산 속도는 제어되고 있는 양상이기는 하다.
과수화상병의 명확한 유입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5년 경기도 안성의 한 배 과수원에서 처음 발생(43농가 42.9ha)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후 소폭의 등락을 반복해 오다 2019년(188농가 131.5ha)에 이어 2020년 744농가에서 394.4ha에 이르는 최다 발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줄어들어 특히 2025년 발생 면적은 55.4ha로서 최대 발생해이며 정점이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85.9%가 줄어든 약 14% 수준에 불과했다. 2024년 86.9ha와 비교해도 36.2%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손실보상금 지급액도 2020년 728억 원에서 2025년에는 81억 원으로 감소하였으나 타작물에 비하면 여전히 규모가 작지 않다.[표]

이에 전체 사과·배 재배 면적의 약 0.13% 수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어서 시장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의 사후약방문이 아닌 정부의 선제적 예찰과 농가의 적극적인 방제 노력을 작금의 지속적 감소세의 이유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정부 선제 예찰·농가 적극 방제 노력 결과
과수화상병의 주요 발생 시기별 특징을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화상병의 도입 및 확산기다. 경기 안성에서 시작된 병이 충청권과 강원권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었다. 초기에는 발생 면적이 크지 않았으나 2019년부터 기상 조건과 맞물려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잦은 강우와 높은 기온으로 인해 역대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던 2020년과 2021년은 대유행기로 분류한다. 그런 만큼 이 시기는 사과·배의 수급 불안 우려가 작지 않았으며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한층 강화된 중요 시기라 할 수 있다.
반면 겨울철 궤양 제거와 개화기 약제 방제 의무화가 정착된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통제 및 안정기로 평가된다. 과거 농촌진흥청에서만 가능하던 정밀 진단이 각 도 농업기술원까지 확대되어 대응 속도가 빨라졌다는 평가다.
2015년 안성 배 과수원서 처음 발생(43농가 42.9ha) 보고
개화기 방제는 화상병예측시스템(www.fireblight.org) 활용
농촌진흥청, 수입원제 대체 가능한 화합물을 개발·선발
농업인, 개발된 기술 충실 실행하면 100억 이상 효과 기대
과수화상병은 따라서, 병원균이 침입하기 전이나 직후에 약제를 살포하여 병원균의 감염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들의 공통된 견해이자 처방이다. 화상병균은 꽃이나 어린잎에 감염이 되면 조직의 형성층과 물관을 타고 식물체 내로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무의 주간부를 통해 뿌리까지도 옮겨지게 된다. 특히 형성층의 세포사이를 이동하여 주변 세포를 파괴하면서 처음 감염된 부위에서 주변 조직으로 확산하게 되는데 설사 침투이행성 농약이라도 형성층까지 침투하여 병이 든 부위를 치료할 수 없게 된다. 화상병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다.
이에 예방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병원균이 월동할 수 있는 나무의 궤양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과원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증상이 없는 무병징 나무에서도 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정시 도구 소독을 엄격히 실시함으로써 혹시 모를 전파를 막아야 한다.
또한 화상병이 건전한 나무로 전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생제 같은 농약을 개화기에 위험경보가 떴을 때 24시간 이내에 살포해야 한다. 개화기 방제는 화상병예측시스템(www.fireblight.org)을 활용하여 적용할 수 있다. 사과·배 농가에서는 개화가 시작되면 매일 아침 예측시스템에 들어가 화상병의 위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고 약제살포 시기 등 농작업을 준비한다면 화상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개화기 방제기술은 농촌진흥청 농사로에서 동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면 보다 쉽게 예측시스템을 활용하여 적기에 약제를 살포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개화기 방제기술 ‘동영상’ 제공
화상병은 병원균의 잠복처인 ‘궤양 제거’가 방제의 성패를 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2025년 11월부터 2026년 4월 하순 까지를 ‘사전 예방 중점 기간’으로 정하고 겨울철 궤양 제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한 2024년 7월 식물방역법이 개정됨에 따라 농업인 및 농작업자의 병해충 예방 교육 이수가 의무화되었다. 교육 미이수나 예방수칙 위반 시 손실보상금이 감액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 5~7월 집중 발생기에 매주 화요일을 ‘화상병 예찰의 날’로 운영하며, 발생지 인근 과수원에 대한 정밀 예찰 주기를 단축하여 초기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상병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식물방역법에서 금지급 검역병원체로 취급되는 화상병균은 국내에 들어오면 모두 폐기를 해야 하는 고위험병원체다. 이런 고위험병원체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게 관리하는 시설을 생물안전3등급 온실로 분류하는데 국내에서는 지난 2024년 과기정통부의 허가를 받아 2025년부터 운영중에 있다. 현재 방제제 개발을 위한 약효 검증 및 작용기작 구명, 화상병균의 감염경로 구명 등 화상병뿐만 아니라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포도 피어슨병 등의 진단 관리 기술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국내 화상병 농약은 모두 수입 원제를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화합물을 기 개발하여 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농가를 위해 세균을 잡아먹는 박테리오파지나 항균물질을 분비하는 미생물을 선발하는 등 기존의 미생물농약보다 탁월한 방제 효과를 확인한 상태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이제 단순 발생 억제를 넘어 데이터 기반의 정밀 예찰과 기후변화에 따른 방제시기 최적화 등 정부의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즈음이다.
이용환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은 화상병 방제제 개발 보급 시 기대 효과에 대해 “현재 화상병 방제 농약은 원제를 모두 수입하여 제조하고 있다”면서 “연간 화상병 방제비로 200억 원 이상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데 국내에서 개발하고 있는 화학농약과 미생물농약이 상용화 된다면 수입 원제의 50% 이상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상병이 발생할 경우 폐기와 함께 이루어지는 보상비로 많은 규모의 국가 예산이 투여되고 있지만, 농업인 입장에서는 보상비보다 피부로 느끼는 피해 규모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면서 “화상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농업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을 농업인이 충실히 실행한다면 연간 100억 이상의 피해 경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주기 예찰·소독 생활화 통해 일터 수호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무엇이든 소기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가당하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개화 전 및 개화기 방제, 도구 소독 등 현장 농업인의 초기대응 필수 실천사항 이행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병해이다.
겨울철 전정 시 병원균의 월동처인 궤양을 반드시 제거하고 약제를 도포해야 한다. 전정 가위, 톱 등 작업 도구는 70% 알코올이나 락스 20배 희석액으로 수시 소독하는 등 도구 소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또한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배부한 약제를 개화 전(1회), 개화기(2~3회)에 맞춰 각각 살포하는 등 적기방제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잎, 꽃, 가지가 불에 탄 듯 검게 변하는 의심 증상 발견 시 즉시 신고하는 등 제반 사항 수행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과수화상병은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최선의 책(策)’이다. 여전히 완전 박멸이 어려운 검역 병해충이다. 비록 발생 면적 비율이 전체 재배 면적의 0.1% 내외로 관리되고는 있다해도 잠복 감염원의 불규칙한 발현 가능성이 상존한다. 지속적인 자가 예찰과 도구 소독, 적기 방제 등 제반 공동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과원은 내가 지킨다’는 주도적 자세로 주기적 예찰과 소독을 생활화해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농가의 철저한 준비만이 우리의 소중한 일터를 지키는 ‘유일 방패’가 될 것이다. 이웃 과원과의 경계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가 방제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