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어온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와 ‘원가조사 보고서 작성기관 지정제’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1일부터 시행을 확정했다. 농식품부는 두 제도의 시행에 따라 ‘2016년 농업기계 구입지원 사업시행지침’을 개정해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에 통보했다.
당초 모든 신규진입 농업기계에 시행 예정이었던 원가조사 보고서 제출을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트랙터용부속작업기 중 로우더, 로터베이터 등 5개 기종에 한정한 것을 빼고 주요골자는 원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농업기계 원가조사에 대한 적용은 내년 1월로 유예했다. 국내에서 제조되거나 수입되어 국내에서 판매되는 농업기계와 부품에 대해 실제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가격표시제는 원안대로 시행키로 했다.
대리점 제도보류 탄원 무산
농협 최저입찰 해결 재요청
앞으로 농업기계 공급자는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에 따라 판매가격을 표시해야 하고 판매가격 변동이 있을 때에는 즉시 해당 시·군 및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에 통보해야 하며 시·군 및 조합은 변동 내용을 매분기별 농식품부에 통보해야 한다.
결국 가격표시제 시행을 강행한 정부에 대해 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도 이행의 당사자인 대리점들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 없이 내몰리게 된 데에 곤혹스러움을 내비쳤다.
농식품부는 농기계 시장에서의 가격 불투명성으로 인한 농기계 가격의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가격표시제를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기계대리점과 업계는 농식품부에서 제시하는 가격거품과 가격인하의 문제는 가격을 표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농기계기업과 농협의 최저입찰과정에서 나온 문제라는 것을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농업기계유통협동조합은 제도 시행전 “대부분의 농기계 대리점들이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검토, 대안 마련이 부족하니 제도시행을 보류해 달라”는 탄원을 농식품부를 비롯한 주요기관에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업기계유통협동조합은 가격표시제와 거품제거와의 관련성이 미약하며 대리점과 회사의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며 많은 우려를 표했다.
“농기계회사들과 농협 농기계 은행사업의 최저가 입찰과정에서 나온 가격거품 문제를 시장경제와 자율화에 맞지 않는 소비자가격표시제의 시행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대리점에서 가격을 표시한다고 가격거품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회사는 갑, 대리점은 을이라는 현실적인 관계 속에서 회사는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판매가격을 관리하려 할 것이며 대리점이 농협 최저가로 판매하거나 판매 거부할 경우 농기계회사와 대리점의 관계는 극한 상황으로 갈 수 있고 그 결과 농민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농업기계유통협동조합은 지금까지 농기계 판매방법이 워낙 복잡, 다양해 실질적 표시제도의 이행이 어려운 점도 토로했다.
“지금까지 농기계 판매방법을 보면 끼워주기, 수리비 삭감, 중고인수, 현금판매 여부, 자부담금 입금 시기 등 여러 변수로 실질적인 소비자 판매가격이 변동됐으므로 제시한 가격대로 판매한다는 확인이 현장에서 어렵다는 점”도 제시했다.
농업기계유통협동조합은 “농기계 판매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면서 농협 최저가가 존재하는 한 대리점 경영이 매우 어려워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후봉사에도 영향을 미쳐 농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리점과 업계에서는 가격표시제 시행이 확정된 지금이라도 농식품부가 가격거품의 원인이 무엇에 있는지 인식하고 농협중앙회의 농기계 최저입찰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일부 외국계 기업, 영업비밀·재산권 침해 문제제기 조짐
시행이 확정된 ‘원가조사 보고서 작성기관 지정제’가 몰고 온 반향도 적지 않다. 앞으로 신규 진입 또는 가격인상을 하는 정부지원대상 농업기계는 정부가 정한 원가조사 보고서 작성기관의 원가조사 보고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농식품부는 일단 신규진입 농업기계 전체에 시행 예정이었던 원가조사 보고서 제출을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로우더, 로터베이터 등 5개 기종으로 축소 시행했다.
원가조사 대응을 위한 추가적인 비용 발생을 염려하고 있던 일부 중소기업들은 일단 안도의 표정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은 소형농기계의 가격이 낮고 판매수량도 적으며 수요자의 요구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다보면 원가조사 비용이 수익에 비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예정대로 내년부터 모든 신규 농기계에 대해 원가조사 보고를 시행한다면 유예기간은 단 6개월뿐이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시장상황이 바뀌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인 셈이다.
‘원가조사 보고서 작성기관 지정제’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은 예상대로 외국계 농기계기업에서 나타났다. 제도 시행이 결정되고 나서 일부 외국 농기계기업 관계자가 이의제기를 위해 농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을 방문했으며 이 자리에는 코트라 옴부즈만 전문위원도 배석했다는 후문이다.
기업의 원가조사 보고는 시행 전부터 사업자의 특허권, 영업비밀, 재산권 침해의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외국 농기계기업의 반발이 있었다.
또한 현행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융자지원은 수익적 행정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의 철회 내지 취소는 당사자의 불이익을 정당화할 경우에만 합당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업의 영업비밀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융자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해당 기업의 경영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라고 본다면 이는 침익적 성격이 없지 않다는 주장이다.
법률적인 검토를 해놓은 것으로 알려진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원가자료 제출 거부 등으로 맞선다면 무역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없지 않다는 관련 전문가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2016년 농업기계 구입지원 사업시행지침’ 개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지원대상 농기계 중 공급실적이 2년동안 10대 미만으로 저조한 경우 농업기계 형식(모델) 등록을 말소하기로 했다. 또 신규로 농업기계 형식을 등록하려는 자는 ‘등록 기본요건 및 농업기계 사후관리업자 지원 및 관리요령’에 따른 사후관리업소 계약 현황 등을 갖춰야 한다.
이와 함께 농업기계 공급자는 농업기계 공급시 사후관리 이행확약서 및 전자세금계산서를 농업인 및 대출취급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수기 세금계산서는 인정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전자세금계산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은원 l wons@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