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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유통의 ‘경고등’ …균형이 필요하다

[쇠스랑] 차재선 기자

며칠 전 전북 익산에서 40여 년째 농약 시판상을 해왔다는 한 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뜸 “요즘 농약 장사는 버티는 게 목표일 정도”라고 했다. 농협 계통 농약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거래가 눈에 띄게 줄었고, 단골 농가까지 계통구매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은 쉽지 않고 외상·기술지도·소량 공급 같은 기존 역할을 유지하기도 갈수록 버겁다고 했다. “농협이 커지는 건 막을 수 없다지만, 동네 농약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호소였다.


국내 농약 유통은 지난 20여 년 사이 뚜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시판 중심이던 구조가 농협 중심으로 재편됐다. 농협 계통 비중은 2000년대 중반 30%대에서 2023년 55%를 넘어섰고, 업계에서는 60% 고착화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점유율 이동을 넘어 유통 주도권의 이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농협은 전국 조직망과 금융·자재 공급 기능을 결합해 농자재를 패키지로 공급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고령 농가 증가로 안정적이고 일괄 구매가 가능한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도 농협 집중을 가속화 했다. 결과적으로 농약 유통은 ‘개별 거래 중심’에서 ‘조달·계통 중심’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농협 중심 구조는 분명 장점이 있다. 대량 구매와 가격 통일 공급으로 농가 체감가격을 안정시키고, 전국 단일 공급망을 통해 재해나 병해충 확산 시 신속한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 실제로 계통가격은 시장 기준가격 역할을 하며 급격한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을 해왔다.


문제는 그 이면이다. 시장이 한쪽으로 기울수록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시판 유통망은 점유율 감소보다 기술지도·제품 다양성·지역 밀착 서비스 같은 기능 약화를 더 우려한다. 지역 농약상은 단순 판매 창구가 아니라 작물별 처방과 병해충 대응, 긴급 방제, 소량 다품종 공급을 담당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특히 과수·시설원예처럼 기술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이런 현장 밀착 서비스가 생산성과 직결된다. 유통 채널이 단일화되면 경쟁과 선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 구조 역시 부담이다. 농협은 대량 조달을 바탕으로 낮은 마진 구조를 유지할 수 있지만, 소규모 시판상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계통가격이 사실상 기준이 되면서 시판 가격 경쟁력은 더 약해지고, 단골 농가가 하나둘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외상 거래와 기술 상담, 긴급 배송 같은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수익은 줄어드는 구조다. 현장의 체감 위기는 통계보다 훨씬 빠르다.


제조사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계통 비중이 커질수록 가격 협상력이 약해지고, 원료 가격과 환율 부담을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진다. 수익성 압박이 연구개발과 현장 지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통 집중이 농가 가격 안정이라는 장점만 갖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해외에서도 협동조합 중심 유통은 흔하다. 다만 민간 유통과의 역할 분담과 경쟁 구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건강성이 달라진다. 협동조합 중심이냐 아니냐보다 균형과 감시 장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농약은 농업 생산의 필수 투입재다. 가격 안정과 공급 효율을 갖춘 계통 유통의 장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역 밀착 서비스와 기술 지도를 담당해 온 시판 유통의 역할이 함께 작동할 때 시장은 더 건강해진다. 익산의 40여 년차 베테랑 시판상이 전한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농협도 필요하고 우리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동장이 너무 기울었어요.”


유통 구조가 한 방향으로 기울수록 균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