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 & Research, WUR)에서 주관하는 섬머스쿨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바헤닝언 대학교는 지속 가능한 농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대학으로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농업 분야 연구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난 프로그램에서 필자는 네덜란드의 생태농업 실천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처음 방문한 농장은 약 0.5헥타르, 1500여 평의 작은 규모로 단 두 명의 농장주가 관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생산성보다는 기후회복력, 생물 다양성, 생태적 안정성을 최우선 목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이를 고려해 병해충 방제와 토양관리, 작물의 배치를 생태적 관점에서 설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농장에서 우리 재생유기농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토양 교란을 최소화한 경운 없는 토양관리 전략이었다. 작물이 자라는 이랑에는 퇴비를 두껍게 깔아 토양 유기물 함량을 높이고, 고랑에는 톱밥을 덮어 수분 증발을 막고 잡초 발생도 줄였다. 이는 경운 없이도 토양구조와 미생물 활성을 유지하고 비료 사용량은 물론 제초 작업에 드는 노동력도 현저히 줄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또한, 생태적 다양성과 병해충 관리를 고려해 작물을 배치했다. 농장은 부추나 케일처럼 한 번 심으면 반복해서 수확할 수 있는 다년생 작물 위주로 구성됐다. 식용 꽃을 함께 심어 천적 곤충의 서식처로 활용하고, 꽃을 지표 식물로 활용하여 병해충 발생을 조기에 감지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향이 강한 작물인 파, 당근 등을 교대로 심어 해충의 기피를 유도하고, 작물 간 거리와 배치도 해충 발생 밀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고 한다.
이 농장에는 100종 이상의 작물 품목과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작물을 함께 심거나 돌려심기(윤작) 함으로써 기후 불안정성에 대한 위험과 병해충 피해 분산, 토양 내 양분 이용효율 향상 등 다양한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이 농장은 작으나 외부 투입 자재를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동시에 생태계 기능을 작물 관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설계됐다. 이들은 단지 ‘유기농’이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과 회복을 우선에 두는 농업을 실천 중이었다.
이번 현장 방문으로 필자는 유럽의 생태농업이 토양-생태계-농업의 회복을 지향하는 농업방식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필자가 현재 연구 중인 재생유기농업과 그 궤를 같이한다. 재생유기농업은 단순한 생산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토양 건강, 생물 다양성, 탄소저장, 지역사회 모두를 되살리는 농업방식이다.
퇴비 기반의 무경운, 피복재배, 다품목 돌려짓기, 천적 활용 전략 등 유럽 생태농업이 실천하는 기술은 한국의 농업 현장에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중소농 중심의 농가 구조, 기후 불안정성, 높은 외부 자재 의존도, 노동력 부족 등 우리 농업이 갖는 문제를 고려한다면 재생유기농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라는 복합적 위기 속에서 우리는 ‘생산성 중심의 농업’에서 ‘회복 중심의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재생유기농업으로 ‘찐’ 환경농업을 실천한다면 그 전환이 더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