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유전자원은 미래 식량안보와 품종개발의 핵심 자산이지만,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종자 활력이 저하되어 발아율과 생존성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종자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활력 평가가 필수적이지만, 기존 방식은 시간과 비용, 자원 손실 측면에서 한계를 보여왔다.
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종자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약 10년 주기로 종자를 실제로 발아시켜 활력을 확인하는 발아시험을 수행하고 있다. 이 방법은 정확성이 높은 공인된 방식이지만, 종자별로 7~14일이 소요되고 검사 과정에서 종자를 직접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귀중한 보존 자원이 손실되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연간 약 2만 자원을 대상으로 검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체 기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은 종자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활력과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디지털 기반 종자활력 및 수명 예측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기술은 ‘근적외선분광법(NIRS)’과 ‘초분광 이미지 분석’을 활용해 종자 내부 상태를 비파괴적으로 진단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종자의 발아 가능성과 저장 수명을 예측하는 것이 핵심이다.
‘근적외선분광법’은 종자에 반사되는 빛의 패턴을 분석해 내부 화학적·물리적 상태를 추정하는 기술로, 연구진은 이를 활용해 밀과 들깨 종자의 활력을 예측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실제 유전자원에 적용한 결과, 밀은 R²=0.928, 들깨는 R²=0.946 수준의 높은 예측 정확도를 확보했으며, 이는 기존 발아시험 결과와 비교해도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를 기반으로 밀과 들깨 종자 활력 예측 기술에 대한 특허도 각각 출원되어 기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초분광 이미지 분석’을 이용한 종자 활력 평가 연구도 진행 중이다. 팥 종자를 대상으로 인위적 노화 처리 후 이미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발아율과 비교 분석함으로써 예측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향후 벼·보리·콩 등 다양한 작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진은 종자 발아율과 수명을 동시에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 ‘SeedVia’를 개발하고 이를 유전자원관리시스템(GMS)에 탑재했다. 이 프로그램은 초기 발아율, 저장 기간, 온도, 수분함량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종자 발아율이 기준치(75%) 이하로 떨어지는 시점을 자동으로 예측해 준다. 이를 통해 기존처럼 모든 종자를 일괄적으로 검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종자별 상태에 맞춘 선별적·예측적 관리가 가능해졌다.

관련 연구를 수행한 우희종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연구관은 “이번 기술 도입으로 종자 활력 평가 체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존 발아시험 방식에서는 결과를 얻기까지 7~14일이 소요됐지만,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약 1시간 내 결과 도출이 가능하다. 종자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비파괴 방식으로 최대 400립까지 소모되던 종자 손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됐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불필요한 발아검사를 줄이고 자동화된 분석을 적용함으로써 인력과 비용을 약 62% 절감할 수 있다. 종자 활력 평가 주기도 기존 10년 단위에서 작물 특성에 따라 5~30년 범위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는 유전자원 관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제한된 자원을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아울러 이번 기술은 단순한 검사 방법 개선을 넘어 유전자원 관리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험과 주기에 의존하던 기존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예측 기반의 과학적 관리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보다 정밀하고 지속가능한 유전자원 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우희종 연구관의 이야기다.
향후 이 기술이 다양한 작물과 종자은행에 확대 적용될 경우, 국가 차원의 유전자원 보존 역량 강화는 물론 국제협력 기반 기술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우희종 연구관은 “이번 기술은 종자 활력 평가를 비파괴·신속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유전자원 관리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확보한 데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작물에 적용해 국가 유전자원 보존과 활용 기반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