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순 이사
(한국작물보호협회 시험연구부)
이제는 농약(農藥)을 현대농업의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 요소’라 말하기도 멋쩍다. feel uncomfortable..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말하는 것이 오히려 억지스럽다고나 할까? 신비롭지도 않다.
농약을 대하는 일부의 이율배반적 시각만을 떼어놓고 보면 이젠 사실상 후진국형 안전성 이슈도 거의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시대적 진보와 궤를 같이하는 긍정적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유감인 것은 여전히 농약 진보와는 상당의 괴리된 소비자 시각이 불식(拂拭)되지 않고 있음이다.
독일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칼 하인츠 슈타인 뮐러는 ‘식품이 오늘날처럼 안전했던 적은 없었다. 또한 소비자가 지금보다 더 불안했던 적도 없었다. 그 이유는 불신이다’라고 설파했다.
바야흐로 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스포츠 등 매체마다의 콘셉트도 무궁무진하며 다양하다. 수위도 놀랍도록 자극적이고 노골적이다. 시청자의 기대나 예상을 뛰어넘기 일쑤다.
최근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전직 위정자 출진이 진행하는 YouTube를 접하고는 아연실색했다. “한국은 농약중독, 신토불이는 허상입니다”라는 자극적 제목이 주는 불길함에 혹시나 해서 찾게 되었다.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신토불이란 사람의 신체와 그 사람이 태어난 고장의 토양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작물이 우리 체질에 맞는다는 의미로써 그 어디에도 농약사용 유무와 관련이 없다.
물론 방송 의도가 고의적이라거나 특정분야를 폄훼할 의도였다고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친환경 유기농법이 선(善)이요 나아갈 방향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명분이 옳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옳은 것일 수는 없다.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는 농약이나 국내 농산물에 대한 불신이나 불안이 실재(實在)와 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일부의 예를 들어 소회를 적고자 한다.
함께한 두 사람의 패널은 시종 농약을 주제로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이어간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농약을 포함하지 않을 때”라는 신개념의 정의를 앞세우는가 하면, “국제기준으로 그냥 농약에 빠뜨렸다 건져낸 농산물을 먹는다”는 등의 극단적 표현으로 보는 이들을 선동한다.
이어 한국이 FAO기준 세계 농약사용량 1위라며 친절하게도 국가별 ha당 농약사용량을 열거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내 농업여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한국이 1위도 아닐뿐더러 농약사용량이 많은 이유로 “조방농업을 영위하는 외국에 비해 집약농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는 식의 알쏭달쏭 발언으로 에둘러 넘어간다. 이 정도면 단순 ha당 농약사용량이 높은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말이다.
또 다른 패널은 “농약이란 용어를 포장해서 작물보호제로 부른다”면서 “농약은 부정적이니까 긍정적으로 해서 농약사용을 유도한다”고 부연하고는 고맙게도 작물보호협회를 언급하며 ‘작물보호협회가 원래는 농약공업협회였다’는 연혁도 거론한다. 산업에 대한 상당한 이해력이다. 물론 지난 2006년 상호명을 바꿀 당시 부정적 인식을 다소나마 바꾸고자 했던 속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나 단순 병해충 및 잡초를 방제하는 농업약제라는 협의 의미를, 소중한 농작물(crop)을 보호하는(protect) 제품(product), 즉 CPP로 정의하고자 하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고자 하는 일환이었을 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사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며 최신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일련의 자구노력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호명을 바꿔 농약사용을 유도하려 했다는 이들의 진단은 그래서 심각한 오진이다. 농약 없는 일상의 영농행위를 마다할 만큼 농약산업계가 비윤리적이거나 상업적이지 않음은 불문가지다.
진행자의 어릴 적 외가에서의 경험담은 점입가경이다. “점심 식사 때 농약 제거를 깜빡한 텃밭의 고추를 먹은 1시간 후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무용담이다. 도대체 농약을 어떻게 얼마나 뿌렸기에 식사 때 먹은 고추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인가. 농약 때문이 아니라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 때문이라면 모를까. 농약의 위해성이라 말하려는 몰이해와 비과학적 시각이 참으로 놀랍고 안타깝다.
진행이 중후반에 이를 즈음 이들의 논조는 자연스레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향한다. 예상대로다. 제시한 비법이 놀랍고 초현실적이다. “일단 유기농으로 가야하는데 그 비용을 사회가 같이 감당하도록 합의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방향을 제시한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 막대한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자는 말인가.
첨단 농업기술은 물론 우수 자재가 망라된 현재에도 곡물자급률 24%대의 누란지위(累卵之危) 시대를 살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국가를 지배하지만,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인류를 지배한다’고 설파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두가 유기농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과연 시의(時宜)한지 되묻고 싶다.
‘특정 농법과 농산물 안전성 비례’는 잘못된 상식
참으로 위험천만한 논리다. 유기농법은 비록 농약과는 ‘빙탄(氷炭)의 농법’이지만 나름 철학을 가진 각자의 분들이 소신껏 영위하며 소비자 선택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특정 농법과 농산물 안전성이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은 잘못된 상식이며 비과학적이다. 특정농법을 종용해서도 안 된다. 다만 효율적 영농행위와 먹거리 사정을 감안,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농약을 통해 저렴한 채소를 다량 소비하는 구조가 문제’라든가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등의 온갖 비과학적 비합리적 비상식적 주장들이 등장하지만, 한정된 지면으로 모두를 열거, 설명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다른 기회를 도모하고자 한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환경성과지수(EPI) 평가결과 농약규제 분야가 세계 1위 수준으로 평가받는 영광(?)을 누린 국가다. 세계적으로 농약규제가 가장 잘 된 나라라는 의미다. 이 정도면 산업계는 몰라도 적어도 소비자들은 크게 웃어도 될 일 아니겠는가.
사람에게 의약품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없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의약 없는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농약은 소중한 농작물이 1500여 종 이상의 병해충 및 잡초로부터 노출되거나 위협받을 때 구해주는 고마운 농업약제(農業藥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농약을 사람이 먹는 것으로 가정해 그 위험성을 상상하거나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 매사 ‘거안사위(居安思危) 지혜’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