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제조사와 유통기업에서 30여 년 종사했던 사람이 있다. 오랜 노하우를 무기로 삼아 농업계의 판로개척 업종으로 전환했다. 농촌 기업들을 섭렵한 지 5년여가 흐른 뒤 이런 소회를 밝혔다.
“농산물의 판로 개척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농촌 기업들, 성장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유지를 목표로 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냉정한 평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한 토로이기도 했다. 성장할 수 없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매우 답답하고 괴로운 일일 터, 계속 농촌을 기웃거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첫째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시장에서는 온통 피 튀기는 경쟁과 싸움으로 살아야 해요. 그런데 농촌에는 나무와 덤불들과 얘기를 하는 도인들이 있더란 말이죠.”
두 번째 이유는 더 신선했다.
“제가 기업 마케팅 전문가로 살았는데, 요즘 아주 놀라운 전략을 하나 찾아냈어요. 기업의 마케팅이란 게 대개 상대를 때려잡는 거예요. 경쟁 기업, 경쟁 상품을 잡아먹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그런데 농촌 마케팅은 상대를 살리는 전략을 써야 해요. 상대를 살려주고 도와주는 전략을 써야 내가 살아요. 놀랍지 않아요? 이런 마케팅 전략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그러니 성장하지 못하고 유지만 해도 시도할 가치가 있지요.”
호오, 농업 농촌의 마케팅은 일반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식물들의 가치관 아닐까. 그리하여 그는 성장이 아닌 ‘유지 마케팅 전략’을 개발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폴란드 시인 비사와바 쉼보르스카의 ‘식물들의 침묵’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는 내 관심 따위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나는 부러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너희들 중 몇몇을 정성껏 들여다보곤 하지.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거란다.
동승한 사람들끼리는 의례 이야기를 나누는 법.
최소한 날씨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거나 스쳐 지나가는 역들에 대해서 떠들곤 하지.
덤불, 관목, 잔디, 골풀…
내가 너희를 향해 속삭이는 건 전부 혼잣말이구나.
너희는 좀처럼 귀 기울이려 하지 않으니.
식물들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말을 이 시인이 대변한 듯하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식물들에게 귀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