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전문용어로 ‘내로남불’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신선한 표현으로 대우받았지만 지금은 뻔한 일상용어가 됐으니 전문용어로서의 자격은 박탈된 셈이다. 사람이 사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전문가였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뻔한 사람이 되어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남녀간의 사랑은 더욱 심하다. 한때는 불꽃이 튀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뻔한 관계가 되거나 원수 관계로 바뀌기도 한다(불꽃 튀는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꽃을 굳이 비유하자면 불륜이야말로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윤리를 거스르면서까지, 남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까지 불꽃을 태우는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이들은 불륜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사랑과 불륜이 짬뽕으로 범벅된 연인들의 이야기를 하나 전한다. 곧 연말이니까.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10월 터키에서 대규모 전쟁이 터진다. 발칸반도를 통일한 터키와 서방 연합군의 전쟁이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군대가 터키를 물리치고 이스탄불에 진주했다. 이때 프랑스 군의 한 장교가 터키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지만 이 국경은 초월하기가 너무나 힘든 국경이었다. 남자는 점령국 장교, 여자는 패전국의 기혼녀, 사랑과 불륜이 범벅된 관계였다. 게다가 터키는 강력한 이슬람 국가였다. 누가 봐도 부정적 관계이고 불안한 연애였으니 비밀리에 만날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이들이 선택한 데이트 장소는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공동묘지였다. 언덕 아래로는 지중해로 연결된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언덕 위로는 수많은 묘지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불안한 밀애를 나누며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프랑스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야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한 달만 기다려줘요. 본국에 돌아가 전역신청을 하고 살 자리를 마련해 놓고 올 테니.”
남자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때마침 전쟁은 끝났고 남자의 전역은 쉽게 이뤄졌다. 한 달 후, 남자는 민간인 신분이 돼 터키로 돌아와 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여자는 없다. 수소문해보니, ‘아버지에 의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에 의해 세상을 떠나다니.
이슬람법은 엄중하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이국 남자와 연애한 것이 마을사람들에게 회자되자 아버지는 딸을 직접 죽여 명예를 지켰다는 것이다.
남자는 충격을 받고 목이 메어 울었다. 차마 돌아갈 수 없었는지, 그 여자와 만나던 장소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평생을 거기에서 홀로 살아간다. 살면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이야기를 글로 쓴다. 이 슬픈 사랑 이야기는 책으로 발행돼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그는 유명 작가가 됐고 그가 살던 공동묘지의 집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명소가 된다.
지금도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이곳을 찾아 차를 마시며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논한다. 프랑스 남자의 이름은 피에르 로띠(Pierre Roti), 터키 이스탄불 여자는 야지야데(Yaziyade), 공동묘지 언덕은 ‘로띠의 언덕’으로 불린다. 빵 한 조각, 음료수 한 병, 차 한 잔, 마을 한 곳… 모두 상품이 되었다. 사랑도 불륜도 흔적 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야기와 상품’만 남아 있다. 에혀, 사랑무상 세월무상이다. 굿바이 2019.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