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집을 짓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터’이다. 강가인지, 산속인지 혹은 평야인지 그 용도와 목적에 맞는 땅을 골라야 한다. 하지만 좋은 터를 잡았다고 해서 집이 저절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튼튼한 기둥과 대들보,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바닥을 채울 황토 등 수많은 자재가 적재적소에 공급·사용되어야 한다. 좋은 집이란 적합한 터 위에 품질 좋은 자재와 목수의 숙련된 기술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집을 짓는 원리를 우리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농업 생산의 출발점은 재배 품목과 목표 품질에 적합한 농지를 선정하고 필요한 상태로 정비하는 일이다. 일단 농지가 그런대로 모습을 갖추게 되면 그다음은 농기자재의 영역이다.
옛날에는 소와 쟁기 같은 단순한 도구가 전부였지만, 현대 농업은 비료, 농약, 농기계 등 고도화된 자재가 농산물의 생산과 생산성을 좌우한다. 농기계가 사람대신 어려운 작업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대신한다. 지력이 떨어진 땅에 비료를 뿌려서 땅심을 돋우고, 농약을 살포하여 병충해를 방어하는 과정은 집을 보수하며 원래대로의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과 유사하다. 수명을 늘리는 것은 지속성의 확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농업은 토지라는 자연 자본과 농기자재라는 산업 자본, 그리고 농업인의 경영 능력이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특히 시설농업, 가공과 보관을 통해 사계절 내내 먹거리를 공급해야 하는 현대 농업에서 농기자재의 역할은 더욱 절대적이다. 하지만 현실적, 자주적 측면에서 우리 농업의 생산기반은 매우 허약하다. 농사라는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를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농산물 생산 과정에서, 토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 농기자재들을 외국에서 들여온다. 완제품, 아니면 완제품 제조를 위해 필요한 원료들을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농업자주권이 사실상 글로벌 공급망에 저당 잡혀 있는 꼴이다. 물론 그동안 정부는 농지기반정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정작 농산물 생산의 핵심 연료인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은 민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둔 측면이 작지 않다는 생각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계경제에서 자원 우선주의와 전쟁, 분규는 상수가 되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공급망 혼란 속에서 농기자재의 원료 가격은 폭등하고 수급은 불안정한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원료 수급이 불안해지거나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정부가 부랴부랴 나서보지만, 이는 임기응변식 처방일 뿐 합당한 해결책 마련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 농기자재 산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농사 기술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최근 중동사태의 과정에서 우리 농업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올릴 벽돌과 목재 등 건축자재의 확보가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최근 데이터의 자주권을 강조하는 서버린(sovereign:자주주권) AI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먹거리도 자주·주권적인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서버린 식량도 관심의 대상이다. “먹거리 자주율 50%”라는 목표를 향해 우리 공동체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러한 관심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 목표달성과 유지를 위해서 농지를 지키고, 비료·농약·농기계의 국산화를 촉진함과 동시에 국가 차원의 공급망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안전한 국민생활과 먹거리의 확보를 위해 농기자재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 농기자재의 원료 수급 안정화와 국산화, 그리고 품질 혁신을 위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튼튼한 자재가 뒷받침되지 않은 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으며, 안전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농업이라는 거대한 집이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건실한 농기자재 산업이라는 기둥이 바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농민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관련 조직, 농민 그리고 정부가 합심해서 농업이라는 튼튼한 집을 짓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