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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동은 왜 거기 있었나

[쇠스랑] 차재선 기자

한 통의 호소문이 메일함에 들어왔다. 발신인은 한국중고농기계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정현. 내용을 읽다가 잠시 멈췄다. 억울함이 종이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사연은 이렇다. 중고농기계조합이 공들여 준비한 세네갈 ODA 중고트랙터 공급 사업의 조달청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는 ㈜대동이었다. 연간 매출 1조 4,000억 원의 국내 최대 농기계 기업인 (주)대동이 5억 2,000만 원짜리 중고트랙터(10대) 지원사업을 가져갔다는 내용이었다. 대동 연매출의 0.04%에도 못 미치는 소수점 셋째 자리의 금액이다.

 

조합 이사장은 호소문에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초등학교 대회에 출전한 꼴"이라고 했다. 과격한 비유 같지만, 곱씹어지는 표현이다. 물론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다. 반칙도 없었다. 조달청이 공고한 입찰에 대동이 응찰했고, 적법하게 낙찰받았다.

 

문제는 규칙이 아니라 감각이다. 상도의(商道義)라는, 법조문에는 없지만 시장이 오래 합의해온 그 감각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입찰, 처음부터 공평한 경쟁이 가능한 구조였을까. 입찰 평가 항목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기업 신용평가등급, 최근 3년간 국내외 납품 실적, 보유 인력 수 같은 정량 지표들이 평가 기준으로 들어가 있다. 중고농기계 분야의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조 단위 매출의 대기업과 중소 연합체가 이 수치 싸움에서 맞붙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이번 입찰은 결과가 예정돼 있었다.

 

이 사건을 주목하는 것은 대동의 도덕성만이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제도의 공백이다. 현행 공공조달 제도는 일정 규모 이하 사업에서 중소기업를 보호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ODA 농기계 사업은 그 장치 바깥에 있었다. 대기업이 응찰해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었던 셈이다. 대동을 탓하기 이전에 그 틈을 만들어준 제도(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물론 그 틈을 굳이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대동의 판단이 현명했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ODA 사업은 단순한 물건 팔기가 아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 기술과 생태계를 심는 일이다. 중고농기계조합이 이 사업에 공을 들인 이유도 거기 있었다. 세네갈에 중고트랙터를 보내고, 그 인연으로 현지 수리센터를 짓고, 나중에 신제품 한국 농기계의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5억 원짜리 계약 뒤에 10년짜리 생태계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동 역시 같은 이유를 내비친다.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것이다. 두 쪽이 똑같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대동이 그 그림을 몰랐다면 문제고, 알면서 들어왔다면 더 씁쓸하다. 중고농기계 소기업들이 10년을 내다보며 쌓아온 구상을 대기업이 자본력과 신용등급으로 단번에 가로챈 셈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을 정부는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납품 단가 후려치기를 막는 법도 만들고, 기술 탈취를 처벌하는 제도도 손질했다. 그런데 정작 공공 입찰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대형마트의 일요일 의무 휴업처럼, 중고농기계 ODA 사업 같은 중소 전문 분야에는 대기업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중고농기계조합 20개 회원사는 정부 지원 없이 이 시장을 일궈왔다. 버려지는 농기계를 되살려 농업인에게 돌려보내는 일, 화려하지 않지만 없어선 안 될 일이다.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대기업 한 번의 응찰로 흔들릴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단순한 패배감이 아니다. 시스템이 보내는 잘못된 신호다.

 

존디어, 구보다, 얀마와 세계 시장에서 맞붙어야 할 대한민국 대표 농기계 기업이 소기업들의 삶터인 중고 시장에 손을 뻗는 모습은 기업의 품격을 높이지 않는다. 진정한 글로벌 리더라면 소기업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내어주고, 더 높은 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싸워야 한다.

 

대동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왜 그 입찰에 참여했는지, 그것이 국내 농기계 제조업계의 리딩컴퍼니로서의 온당한 역할인지를 묻는다. 조달청도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가 앞으로도 반복되지 않도록 ODA 중소 전문(중고농기계) 분야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검토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5억짜리 중고트랙터 10대. 대동에게는 소수점 아래 숫자다. 중고농기계조합원들에게는 1년치 희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회의 상생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