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天地人). 땅의 소중함을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늘과 땅 속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박경리 작가는 소설 「토지」에서 “땅은 생명의 어머니요, 모든 삶의 뿌리다. 땅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생명의 근거를 잃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뿌리를 소홀하게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구의 육지 가운데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면적은 약 104억ha이다. 이 중 절반인 51억ha가 농업용지이다. 캐나다 크기 만한 15.7억ha가 농경지로 쓰이고 있다. 나머지는 축산용으로 방목지 내지는 사료작물 재배지로 이용된다. 흥미로운 점은 농업용지의 75%이상을 축산을 위해 사용되지만 실제 인류에게 제공하는 총 에너지의 량의 20%만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 농업강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업용지 면적은 넓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에너지의 원료생산과 작물생산, 축산물 생산이라는 3축 간 농업용지 이용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식량안보·부족 문제들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풍부한 농경지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작은 땅덩어리 위에서 많은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정세가 어지러워지면 곧바로 생필품이, 먹거리의 수급과 가격문제에 대한 염려가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업용지의 축소가 우리 공동체의 지속에 해롭다는 점을 경시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체득해 왔다. 농지의 축소와 먹거리 부족은 공동체의 유지에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먼 옛날의 전쟁 이야기도 필요가 없다. 당장 1980년 미국의 대소련 곡물 금수조치는 연방제국의 분열을 야기하는 단초였다. 아프리카국가들의 먹거리 부족과 국가의 존망 위태로움은 자주 보는 현상이다.
농경지 면적의 감소 규모와 추세는 커다란 우려를 자아낸다. 1990~2023년 사이 우리 농경지 면적은 28.3%나 줄었다. 반면 세계의 그것은 오히려 29.0%가 증가하였다. 나아가 이웃 나라인 중국의 경우 인구증가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지만 실제 같은 기간 농경지 면적은 2.9%가 줄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농경지 ha당 부양 인구수가 세계는 지난 33년 사이 6.6명에서 5.1명으로 줄어든 반면 우리는 25명에서 34명으로 폭증했다. 중국은 약 11명에서 큰 증감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제아무리 농업의 생산성을 올린다 해도 스스로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990년대 초반 70% 수준이던 식량자급률이 지금은 47% 수준 대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질문 하나가 생긴다. 정부가 매 5년마다 세우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기본계획)에서 총물량을 기반하여 제시한 식량자급률 목표가 60%이었다. 그런데 이미 50% 이하로 하락한 식량자급률을 어떠한 방법으로, 무슨 근거로 60%까지 끌어올린다고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최근 목표: 55.5%).
나아가 경험적으로 식량자급률의 목표이행에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점, 필요한 농경지의 확대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식했었을 텐데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농경지를 비농경지로 사용했어야만 했는가이다. 매년 15,000ha 이상의 농지를 전용하고 있다. 농어업용 시설에는 500ha정도이며. 나머지는 공용시설과 주택, 광공업시설 등으로 쓰여지고 있다.
갈수록 농지전용이 쉬워지고 있다. 정부의 높은 식량자급률 목표치와는 상반되는 정책이다. 농지전용 부담금이면 쉽게 전용이 되고, 재생에너지 지구 등 농촌특화 7개 특화지구내 건물 설치도 용이해진다. 농지에 태양광이, 각종 시설이, 이제는 화장실과 주차장이 어렵지 않게 들어설 수 있다.
약해져 가는 먹거리의 자주성 제고라는 ‘공공성’이 편의성 및 경제성의 제공이라는 ‘사적 영역’에 시나브로 무너지고 있다. 농경지는 한번 망가지면 농업용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콘크리트가 깔리고, 거대한 시설이 들어설수록 우리 먹거리의 자주성은 약화된다. 농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식량안보는 모래성에 불과하게 된다. 어찌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