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가 정부의 ‘농정 대전환 정책’과 연계한 5대 중점과제 실행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농업 정책의 무게중심을 ‘지원 구조’에서 ‘산업 구조’로 이동시키는 적극적인 역할자를 자임하고 나선 모습이다. 농협은 지난달 29일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스마트농업 확산 △청년농업인 육성 △공공형 계절근로 확대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본격적인 구조 개편에 착수했다.
이번 로드맵은 단순한 정책 협력 선언을 넘어 농협의 기능과 역할 자체를 정부 농정 전략에 맞춰 재배치하겠다는 구조적 전환 선언으로 읽힌다. 그동안 농협은 금융·유통 중심 조직 구조 속에서 ‘농업 산업화의 주체’라기보다 ‘농업 지원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생산–유통–기술–인력–소득 구조를 하나의 정책 축으로 통합 설계했다는 점에서 기존 접근과 차별화를 띈다.
특히 출발점을 유통구조에 둔 점은 전략적이다. 농협은 적정 쌀값 유지를 위한 수급관리 기능 강화, 범국민 쌀 소비촉진 운동,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다. 농협공판장의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액을 2030년까지 2,000억 원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상징성이 커 보인다.
이는 기존 오프라인 중심 유통망에서 디지털 유통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유통 단계 단축과 정보 비대칭 해소는 농산물 가격 결정 구조를 바꾸는 핵심 요소다. 생산자가 가격 구조에서 배제되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 거래 구조로 이동하겠다는 방향성이다.
스마트농업 확산 역시 기술 정책 차원을 넘어선다. 농협은 해외 수요 기반 신상품 개발, 신규 유통망 개척, 중소농 중심 보급형 스마트팜 확대를 병행 추진한다. 2026년 말까지 보급형 스마트팜 2,000호 보급 계획은 농업 구조의 개선을 겨냥한 ‘설계도’로 보인다.
스마트농업은 단순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 안정성, 노동력 절감, 품질 표준화, 수출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재편하는 산업 기반 기술이다. 이는 농업을 ‘노동집약 산업’에서 ‘기술집약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청년농 육성도 주목할 만한 프레임 변화이다. 이번 로드맵에서 청년농을 ‘지원 대상’이 아닌 ‘산업 인력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정책 전환으로 해석된다. 재해보험 확대, 공공형 계절근로 확대, 청년농부사관학교 확대, 한국농수산대학교와의 인재 육성 협력은 인력 공급 구조를 체계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농업 인구 문제를 복지 정책으로 완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 안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풀이된다.
농촌 정책 역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하다. 정주 복지 중심의 농촌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갖기 어렵다. 산업 생태계 없는 정주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촌을 복합 산업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접근은 농업 정책의 공간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관건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구조 전환 정책의 최대 변수는 항상 실행 단계에서 발생한다. 유통구조 개편은 기존 이해관계 구조와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스마트농업 확산은 초기 투자비 부담과 기술 격차 문제를 동반한다. 청년농 유입 역시 안정적 소득 구조 없이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구조 전환은 선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농정 대전환의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정책이 산업 구조로 실제 전환될 수 있는가. 계획이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농협이 정책 연계 기관이 아니라 산업 전환의 실행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가.
그런 면에서 이번 로드맵의 성패는 농협 내부 구조 개혁과 현장 실행 조직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책을 설계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책을 산업 구조로 전환시키는 실행 주체로서 농협이 기능할 수 있는지가 핵심 변수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강조한 “돈 버는 농업으로 전환”이 단순한 슬로건으로 머물지 않게 하려면 농업을 투자·기술·수익 구조를 갖춘 국가 전략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