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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팔수록 손해…비료산업 생태계 무너졌다

“농협, 죽음의 무기질비료 최저가입찰 이제 멈춰야 한다”
적정원가 반영되지 않는 농협납품계약으로 업계 최대위기

국내 무기질비료업체들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적자경영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비료생산 체제이며 농협의 계열사인 상장기업 A사는 올 상반기 비료분야에서 400억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는 연말 화학·유류분야의 영업성과를 합해도 사상 최악의 경영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50여년 역사를 지닌 국내 유수의 비료전문기업 B사는 최근 비료 원자재가 상승으로 인한 고정비 증가와 환경규제 대응 시설비 급등으로 올해 사상최대의 적자경영을 나타낼 것을 염려하고 있다.

또 다른 비료전문기업 C사는 올 여름 한 달씩 직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두 달 간 일부 생산시설의 가동을 멈추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고정비를 줄여 적자폭을 줄여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이같은 국내 무기질비료산업의 몰락 직전의 상황은 한국비료협회 6개 회원사가 공동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왜 이런 괴담과도 같은 상황이 비료업계의 현실이 됐을까? 취재 중에 만난 한 관계자는 현 무기질비료업계의 암담한 상황을 온수자청와(溫水煮靑蛙;천천히 끓는 물속의 청개구리)로 표현하며 곤혹스러워했다.


한국비료협회(회장 이광록)에 따르면 남해화학 등 6개 회원사의 지난 4년간의 비료분야 영업이익은 2015년 50억원을 끝으로 2016년 -576억원, 2017년 -279억원, 2018년 -694억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의 영업이익은 이보다 더 심각한 -900억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료 내수 매출액도 2015년 6850억원 이후 5000억원대로 추락해 2016년 5254억원, 2017년 5071억원, 2018년 5077억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무기질비료업계가 처한 최악의 상황은 “영업이익은커녕 손실을 염려해야 하는” 현 농협 납품구조가 원인이라는 것이 업계의 강력한 주장이다.

 

기업 고정비 상승해도 가격 내린 농협…시장역행
농협 납품계약단가는 2016년 23.8%라는 큰 폭으로 인하됐다. 이어 2017년 1.8% 인하, 2018년 1.3% 인하됐고 올해는 가격이 동결됐다. 이에 무기질비료업계에서는 “비료업계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내건 농가소득 5000만원 목표의 제물이 됐다”는 자조섞인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농협 입찰을 통한 대농민 비료 공급이 80%를 넘는 현실에서 ‘농협의 가격 후려치기’는 비료산업 전체를 휘청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무기질비료는 요소, 염화칼륨, DAP, 암모니아 등의 원자재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생산비의 70%를 원자재가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원자재의 등락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산업보다 지대하다. 현 비료업계가 처한 암담한 상황은 2016년부터 큰 폭으로 하락한 농협 납품계약가격과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에 걸친 비료 주요 원자재가의 폭등에서 비롯됐다.

 

요소는 중국의 중소업체 석탄사용 규제 등 환경정책으로 2017년 하반기 이후 수출물량 급감으로 가격이 올랐다. 2018년도 요소의 국내 평균수입단가는 전년 톤당 268달러에서 304달러로 크게 올랐다. 암모니아 348달러, DAP 421달러, 염화칼륨 319달러로 모두 전년대비 톤당 평균수입단가가 크게 뛰었다.


업계는 2019년 농협 비료 입찰에서 주요 원료가격 인상분을 반영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자재를 비롯한 생산비용이 반영되지 못한 최저가입찰이 현 비료업계의 몰락 직전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급격한 가격인하 이은 원료비 상승, 업계 직격탄
특히 올해 무기질비료업계는 “비료를 팔수록 적자가 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A사가 공급하고 있는 주요 요소비료 경우 주원료비의 증가로 인해 농협 계약가 대비 약 23%의 가격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가대로 납품시 그만큼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C사, D사의 맞춤형비료에서도 각각 12%, 19%의 가격인상 요인이 발생한 현실에 직면했다. 여기에 환경규제와 산업안전 강화로 비료기업의 고정비도 증가했다. “올해는 영업이익을 얼마나 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손실을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는 한 비료업체 관계자의 이야기가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원자재가·환율 인상과 고정비 증가 등으로 회원사들의 경영압박이 최악에 달했던 올해 6월 한국비료협회는 주요 원료가격 인상분을 비료가격에 반영해 달라는 공문을 농협경제지주에 전달했다. 6개 회원사 노조 대표들이 회사와 직원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협 항의 방문도 전례없이 이뤄졌다. 농림축산식품부 관련부서에도 업계가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시정해달라는 건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농협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기질비료 생산업체와 농협간 무기질비료 구매납품 계약시 관련조항(제3조, 계약단가 조정)에 는 계약체결일로부터 90일이 경과 후 환율 및 요소 등 국가원자재 가격변동으로 인해 계약단가가 ±3%이상 변동시 또는 매분기 단위로 원/달러 환율이 기준 환율 ±50원이상 변동시 농협경제지주와 공급사가 상호 협의해 계약단가를 조정하도록 돼있다.


이는 년 단위의 계약이지만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고 산업체를 위한 최소한 안전장치이자 농가에 원활한 비료 공급을 하기 위한 옵션이다. 그러나 현 농협은 시장의 흐름과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업계 고혈 짜낸 납품, 농업인 실익은 미미” 
이에 농협 납품에 80% 이상 의존하는 농업용비료 유통구조 하에서는 적정가입찰로 전환되지 않는 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무기질비료산업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는 12월에 예정된 2020년 농협 계통비료 공급을 위한 입찰을 앞두고 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비료가 농가경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유기질비료 등도 포함된 수치로 무기질비료만 따지면 3% 정도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비료업계가 ‘고혈을 짜내는’ 농협적자 납품으로 농업인들에게 돌아가는 실익은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협회는 업체·농업인의 어려움을 감안해 요소비료 할당관세 무관세를 정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업체들은 “낮춘 세금만큼 농협의 가격인하 압력이 들어올 것”라는 비관을 내비친다. 국내 무기질비료산업의 추락을 막는 처방은 “농협 납품가에 적정원가를 반영하는 것”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농업 지속 위해선 비료업계 경쟁력 필수 
최근 비료업계는 국내외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완효성·기능성비료 개발을 통해 농업인 비료 사용량 감소와 수출경쟁력 미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일부 농가들이 수입비료에 눈길을 돌리고 있어 보다 다양한 기능을 지닌 첨단 기능성비료의 개발은 더욱 시급하다. 그러나 적자경영 하에서 새로운 기술개발의 발걸음이 자꾸 주춤거리는 게 현실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비료를 죄다 수입해서 쓸 요량이 아니라면 현재의 불합리한 무기질비료 공급 구조는 시정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무기질비료가 영농의 필수 농자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 기업이 취약해져 필수 농자재의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농업인과 농작물 소비자인 국민들이 그 피해를 입게 된다.


기본 비료의 적정시기 공급과 기술력이 반영된 다양한 비종 개발, 수출 경쟁력 확대 등 무기질비료의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라도 농협 입찰가에 비료 생산의 적정원가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의 현 시점에서 비료업계의 가장 절실한 숙원이다.  


이은원 기자 | wons@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