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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과연 그런가

-Bravo your Life


시골로 내려간 지 10여 년 된 후배를 만났다. 어떤 때는 시니컬하고, 어떤 때는 훈훈하고 어떤 때는 무정해 보이곤 한 후배였다. 약속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앉아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슬쩍 보았다.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였다. 짜식, 여전하네, 라고 말하며 시골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다. 때로 시니컬한 후배가 훈훈하게 말했다.


“살 만해요.”
“다행이네. 하긴, 벌써 10년은 됐지?”
“그렇죠. 근데 뭐 10년이란 게 뭐 중요한가요?”


훈훈한 표정의 후배가 시니컬하게 되물었다.
하긴 그렇다. 세월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절대적인 척도도 아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들고 말했다.


“이 사람 책 중에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본 적이 있는데 네 생각이 자꾸 나더라.”
“꼭 그렇지도 않아요. 보기 나름이죠. 시골은 그런 것이기도 하죠.”


결국은 해석과 대응의 문제인 것이 딱히 그 책에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몇 가지, 떠오르는 구절이 있어서 시골사람이 된 후배에게 물어 보았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환경이 열악한 것이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느껴지던데,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겠지. (시골에서) 다른 목소리 냈다가 왕따 당한다는 말도 어느 사회나 있는 현상인데 시골에서는 더 심하겠지?”


“저는 다른 목소리를 안 내요. 그냥 내가 사는 거죠. 모든 목소리들은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굳이 목소리 하나 더 보탤 필요가 없잖아요.”


무정한 말 같기도 하고, 겸손한 말 같기도 했다. 그가 시골에 잘 정착한 배경도 (잘 정착했는지, 어렵게 정착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런 성격이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나는 믿어 버렸다. 시골로 이주한 사람들이 종종 불협화음에 대한 토로를 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이 시골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충돌은 상대적인 것이라 잘잘못을 정확히 따질 수는 없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있다. 먼저 살아온 사람과 나중에 살게 된 사람의 차이다. 나중에 살게 된 사람들이 먼저 살아온 사람들을 바꾸려 하면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과거부터 내려온 결과이기 때문이고 모든 삶에는 상상 이상의 사연들이 숨어 있곤 하니까.


며칠 뒤 시골 살다 서울로 올라온 선배를 만났다. 그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병 때문이었다. 좋은 병원들이 다 서울에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면 귀경을 해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병원은 서울이 좋지만 공기는 시골이 좋잖아요?” 하고 반농담을 건네자 선배가 말했다.
“공기가 약은 아니잖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몸이 망가지면 자연으로 해결하기 힘들어. 결국은 병원을 끼고 살아야 하는 게 노인의 숙명인데, 오가는 거리가 멀면 병원 다니다 지쳐 죽을걸.”


지극히 현실적인 분석에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젊은 청춘은 도시에서 보내고 노년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준비하던 시대는 가버린 것이다. 농촌에 답이 있다며 시골로 가는 청년들이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는 것도 시대 전환의 사례가 아닐까. 청춘은 농촌에서 보내고 늙어 병들면 도시로 돌아오는 시대의 서막이 올랐달까. 왠지 모르게 당황스러운 이유가 무엇인지, 집중 탐구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