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기름을 먹으세요. 잠들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씩 입에만 대어도 면역력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방금 점심식사를 같이 한 식품기업인이 면역력 강화 비결을 알려 주었다. “단, 생 들기름이어야 해요. 그냥 들기름은 효과가 없어요.” 그러자 동석했던 사람이 말했다. “면역력에는 인삼과 무 아녜요? 뿌리채소야말로 면역력에 최고죠.” 그 옆 사람도 지지 않았다. “면역력에는 역시 김치죠. 그 다음은 나물류고요. 나물만 많이 먹어도 웬만한 바이러스는 이겨낼 수 있어요.” 이 말도 맞는 듯, 저 말도 맞는 듯, 귀를 쫑긋쫑긋 기울이다 보니 면역력 박사가 되었다. 그러자 검증 욕구가 발동했다. 면역력과 음식에 관한 검색을 해보니 별별 식재료와 식품들이 마구 쏟아졌다. 무, 감자, 호박, 당근, 버섯, 우엉, 시금치, 파, 마늘, 브로콜리, 감, 사과, 딸기, 귤, 석류, 키위, 자몽, 아로니아, 바나나… 헥헥. 웬만한 채소나 과일은 다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군, 하고 검증 작업을 마치려다 멈칫했다. 몹쓸 호기심이 다른 부류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면역력’과 ‘고기’의 관계다. 한우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모두 면역력 강화에 일등공신이라는 정보, 뉴스들이
“카페를 해볼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요즘 이런 질문을 부쩍 많이 듣는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5년 전, 10년 전부터 듣던 말이긴 하다. 그것이 유독 많아진 배경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경기가 안 좋아진 지 이미 오래인데 카페는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직장생활도 녹록치 않을 터, 구속받지 않고 즐기며 살고자 하는 가치관 변화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물어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재밌는 비유가 떠올랐다.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10~20년 전만 해도 이런 말들이 흔했었다. 이때 이어지는 대화들이 대부분 비슷했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나, 농사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냐? 대개 이런 식의 대화였다. 하지만 귀농인들의 실패사례와 부지기수의 체험담들이 돌고 돌면서 ‘농사의 어려움’과 ‘농업을 통한 수익성’의 난망함을 이제는 많이들 공유하고 있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 “카페나 해볼까”인 셈이다. 연결 지어 생각하면 이런 대화들이 이어지겠다. 카페는 아무나 하나, 카페 장사가 그리 만만해 보이냐? 오래 전
시골 소녀 ‘시시’는 열두 살 때 한 농장의 가정부가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열심히 살았다. 27세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와 결혼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소를 키우고 버터를 만들고 통조림과 잼, 시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렇게 10명의 아이를 키우며 할머니가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살면서 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시시도 그랬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그림물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지만 물감 살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농사지을 힘도 떨어진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 볼까, 미소를 짓고 손자의 그림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과 주변 풍경을 그려 나갔다. 점차 그럴 듯한 그림들이 쌓였고 그 중 괜찮은 것들을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 마을 약국에서도 할머니의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곤 했다. 그 시골 약국에 들른 미술 수집가에 의해 할머니의 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무명인 할머니의 첫 전시회 명칭은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
마트에 계란을 사러 갔다. 여러 브랜드의 판란들이 쌓여 있는데 무엇을 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싼 것으로 살까, 비싼 것으로 살까. 첫 고민은 이렇게 가볍게 시작되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고민이 점차 심각해졌다. 가까운 동네에서 출하된 것으로 살까, 대기업 브랜드로 살까. 일반 계란으로 살까, 친환경이나 무항생제 표시가 된 것으로 살까. 유기농 계란이나 혹시 방사란도 있을까? 계란 매대 앞에서 번잡한 고민에 시달리다 아내에게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항생제 계란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기업의 것으로 손이 갔다. 빠른 걸음으로 귀가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계란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고민했네.” 계란 포장을 열어본 아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깨지고 비어 있고…” 한마디로 불량상품이었다. 난좌가 비어 있는 곳이 세 개나 있었고 껍질이 깨진 계란들도 몇 개 보였다. 바꿔 오라는 부인님의 명령을 받고 마트로 가면서 불만과 고민이 가중됐다. 기껏 고민해서 이미지 좋은 기업 것을 샀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그나저나 영수증을 안 챙겼으니 어쩐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블랙컨슈머도 많은 세상, 교환을
최근 장정마을 집단 암 발생 원인으로 지목된 ‘니트로소아민’이란 물질은 어떻게 발생된 것일까? 우선 식물은 뿌리에서 질소를 영양원으로 흡수하여 질산염으로 축적된다. 식물에 존재하는 질산염 자체는 안전하지만 사람이 육류나 어류와 함께 섭취하면 위 속에서 타액과 위산 등에 섞여 소화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며 강력한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극한 산성과 혐기상황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질산염이 함유된 유기물이 300℃ 이상의 고온에서 열 분해될 때 화학적 반응에 의해 질소산화물로 발생된다고 한다. 70년대 일본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소아암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자 그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화학비료의 남용으로 질산염이 과다 축적된 야채를 산모가 섭취하면서 생기는 일로 지목하여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다. 유럽농업 선진국에서는 현재 채소 섭취로 인한 질산염 허용기준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잠깐 논란이 있었으나 채소 질산염과 암 발생과의 인과관계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더 문제화되지 않았고, 질산염 허용기준도 정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조사결과에 의하면 이번 장정마을의 문제는 담배의 ‘특이니트로소아민’이 원인이었고, 이
밥은 삶을 좌우하고 술은 죽음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다. 이런 반론도 풍문으로 들었다. 밥은 몸을 살리고 술은 정신을 살린다나. 풍문도 시간을 먹으면 격언이 된다. 숙성된 세월만큼 의미도 성숙해져 이런 격언이 살아남았다. 밥은 나를 살리고 술은 남을 살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치게 똑똑해진 요즘은 ‘가벼운 반주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도 코웃음을 친다. 반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서운하기 짝이 없고, 검은 머리 짐승의 습성에 따라 별별 의심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류의 궁금증이 쌓이고 있다. 밥맛과 술맛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할까. 밥맛없는 사람과 술맛 떨어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재수 없을까. 밥맛은 몇 개나 되고 술맛은 몇 개로 나뉘며 어느 맛이 더 심오할까. 과연 밥맛은 무엇이고 술맛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맛이 무엇인지 가물가물 혼돈에 빠지게 됐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 ‘말모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한글 사전을 편찬하던 이들의 투쟁사다. 300만을 못 넘긴, 작품성 대비 아쉬운 흥행기록… 하지만 그나마도 어디냐, 300만이면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제법 많다. 그건 그렇다. 비교하자면, 말모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즐거운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섹스는 그 많지 않은 즐거움 중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죠. 그걸 자꾸 불경하다고 압박하고 죄를 짓는 양 생각하니까 병이 생기는 겁니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에 나오는 대화다. 즐거운 일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 한 되도록 많이 과감하게 하며 살라는 조언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궁금해졌다. ‘내 삶의 즐거움’들은 무엇일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중구난방 헤매다 보니 영화가 끝났다. 한 가지 희미하게 떠오른 것이 있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수록 즐거운 일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즐거운 일들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즐거운 것들을 많이 찾는 이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만나는 이들에게 툭툭 질문을 던져봤다. 나이 들면서 더 즐거워진 것이 있던가요? “즐거운 걸 찾으면 엄청 많지.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 상상해도 즐겁지 않아?” “내일 일을 걱정하다 보면 끝이 없으니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지. 오늘 일 끝내고 운동할 생각을 하는 것으로도 즐거운데?” “새로운 취미활동을 시작하니 거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훈훈한 옛이야기 한 토막 전한다. 2002년 5월 2일 밤의 일이다. 경기도 안성의 한 축산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구제역 확정 보고가 농림부 상황실에 접수됐다. 상황실 근무자는 갓 임명된 초보 사무관이었다. 그는 행정고시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가축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구제역이 가축에게 매우 위험한 질병이고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근 지역을 긴급히 통제하고 즉각적인 살처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상사에게 보고한 뒤 안성 지역의 부대 한 곳을 수배해 전화를 했다. “여기는 농림부 상황실입니다. 안성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해 매우 위험하니 군에서 장병들을 파견해 축산 농가를 도와 살처분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부대장은 어리둥절했다. 육군본부도 아니고, 국방부도 아닌 농림부 상황실에서 군인들을 이동시켜 달라니… 그래서 가축을 죽여야 한다니… 대한민국 군대를 뭘로 보는 것인가. 응답은 당연히 이렇게 나왔다(당시만 해도 일반인에게 구제역, 살처분 등은 낯선 용어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 야심한 시각에 군대 이동은 불가합니다. 상급 부대의 지시
돼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황당한 시대다. 영문도 모르고 죽고 묻히는 현실이 억울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긴 돼지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신이나 다름없으니, 착한 돼지 입장에서는 ‘신의 뜻에 따라 기꺼이 감내할 죽음’이요, 반골 돼지 입장에서는 ‘무너진 자존을 위해서라도 꽥 소리는 질러야 하는 상황’이다. 옆의 돼지나 옆 동네의 돼지가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순응하는 돼지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돼지는 아무리 강력한 바이러스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강하다며 반항할 수도 있겠다. 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일부 과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바보야, 문제는 돼지의 체력이야.” 일부 반골 돼지들의 주장이다. “우리의 체력을 이처럼 허약하게 만들어 놓은 ‘신(인간)’들은 멀쩡한데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가?” 멧돼지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더욱 황당한 사태요, 사변이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쫓기고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조상들이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바이러스가 돌고 돌아 중국을 거쳐 북한을 거쳐 여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에 농촌의 걱정이 태산이다. 농촌의 걱정이 늘어나면 나라의 걱정도 비례해 커진다. 돼지고기는 닭고기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육류로 꼽힌다. 값비싼 쇠고기와 비교해 서민용 육류의 대표로 꼽히기도 한다. 발병 3주가 지난 현재 ASF는 서북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더 남하하고 확산될까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일단의 방역이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맞길 기대한다. 고기는 단백질을 보충해 기력을 높이기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먹거리도 풍성하고 고기 외의 건강보충제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말하자면, 고기는 맛의 욕구를 해결하고 즐거운 삶의 도우미로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요리사들이 과거의 조리법을 답습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창출하듯이 소비자도 되는대로 먹기보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셰프를 만났다. 그는 “한국인은 고기 맛을 음미하기보다 씹어 삼키기 바쁘다”고 주장하며 ‘고기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작은 변화’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고기는 무슨 맛으로 먹나요? 단맛, 고소한 맛, 씹는 맛, 또 뭐가 있지요? 그 외에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기 맛을 음
목포에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택시도 몇 대 보이지 않았다. 기사는 “경기가 안 좋아 빈 택시를 몰고 돌아다니지 않게 된다”고 했다. 또 “택시 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고도 했다. 어쩐지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콜을 부르지 않았다면 거리를 마냥 헤매다 기차를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차역이 가까워졌을 때 기사가 말했다. “저 앞의 장례식장 보이죠?” “네, 근사하네요.” 답을 해놓고 약간 머쓱해졌다. 장례식장이 근사하다니. 다행히 기사도 동조해 줬다. “그렇죠? 무슨 성처럼 화려한데다 주차장에 잔디까지 깔고 말예요. 저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장였는데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어요.”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바뀌다니, 뭔가 의미가 심장했다. 기사가 설명을 이었다.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니까 결혼식장이 망한 거요. 그래 장례식장이 된 거지. 저렇게 바뀐 곳이 몇 개 더 있어요.” 아, 대번에 이해가 됐다. 그리고 또 대번에 의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죽는 사람들도 줄어드는 시대이니 장례식장은 온전할까? 기사는 그것에 대해서도 답이 준비돼 있었다. “장례식장도 머잖아 망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이 바뀌듯 단어도 나이가 들면 색이 바래고 뜻도 바뀌곤 한다. 나이가 들어 시들고 초췌해지는 단어, 세련되고 깊은 풍미를 더하며 진화하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국적을 바꿔 엉뚱한 얼굴로 재탄생하는 단어들도 있다. 중국 여행을 할 때 일이다. ‘熱狗(열구;뜨거운 개)’라는 간판을 보고 유심히 살펴봤더니 핫도그 판매점이었다. Hot-dog를 직역한 표현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왜 음차를 하지 않고 굳이 의미를 딴 번역을 했을까 의아해 했는데 소시지의 본고향을 여행하며 의문이 해소됐다. 핫도그의 고향은 독일이다. 소시지의 기원지이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시지를 생산하는 나라가 독일이다(소시지와 햄, 빵과 감자. 독일 음식은 이 네 가지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다). 핫도그는 소시지를 빵에 넣어 익힌 즉석음식이다. 어느 독일인이 1600년경에 닥스훈트(dachshund ; 몸통이 길고 사지가 짧은 독일 개)의 모양으로 소시지 빵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그때만 해도 프랑크푸르터 소시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름이 ‘핫도그’로 바뀐다. 개 모양으로 생긴 간편 빵을 팔던 사람이 “따끈따끈할 때 드세요(Hot)”
식도암에 걸린 사람과 설암에 시달리는 사람이 만났다. 식도암이 말했다. “입맛이 당긴다는 말을 이제야 알겠다. (배 쪽을 가리키며) 목구멍에서 음식을 당겨주지 않으니까 (음식이) 내려가질 않아. 입으로 열심히 씹어 삼켜 넣어도 밑에서 당겨주질 않으니 목구멍에 얹히기도 하고, 가끔은 코로 나오기까지 하네.” 설암이 답했다. “나는 뱃속에서 자꾸 맛을 당기는데 당최 입이 받질 않아. 혀가 맛을 느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식욕도 안 생긴단 말이지. 입도 불쌍하고 배도 불쌍하고…”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병세가 호전되는 중이다. ‘요즘 암은 불치병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다가 문득, 누가 누굴 위로할 수 있는가 회의가 들었다. 낌새를 알아챘는지 (원래 육체적 환자들은 정신이 예민해져 정신병 환자들을 금세 알아챈다) 두 암이 앞뒤 안 맞는 말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냐.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늙기 전에 가는 게 낫지.” “너무 오래 살까 무서운 것은 그나마 괜찮은데, 입맛 잃는 건 싫어. 맛있는 거 못 먹는 거야말로 고통 중 상고통이지.” 세상에, 이처럼 관조적인 사람을 만난 지 얼마 만인가 싶었다. 하루빨리 그들에게 입맛
#앎이란 무엇인가 옛날 옛적, 진시황이 수많은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묻어 죽였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었던 이 사건을 일컬어 ‘분서갱유(焚書坑儒 ;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묻어 버림)’라 한다. 그때 시황제가 했다는 ‘썰’ 한 토막(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니 오해 마시길). “번지르르한 책속의 말들을 아이디어라 주장하는 무리들에 지쳤다. 내가 이 책들을 다 어떻게 읽겠는가, 최대한 줄여서 핵심만 가져 오라.” 나름대로 학식 있다 하는 이들이 밤을 새워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한 줄로 압축을 한 뒤,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이 말하는 요지를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가지 더, 시황제가 ‘당대의 모든 책을 불태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몇 가지 예외를 두었다(이것은 ‘썰’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요, 팩트다). ‘의약과 점복 그리고 농업에 관한 책들은 태우지 말라.’ 잔혹한 진시황마저도 하나는 알고 있었으니, 곧 일상에 필요한 실용서적의 중요성이다. 그 실용서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농업에 관한 책이었다. #앎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한국 현대 농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우장춘 박사는, 나이에 따른 앎의 과정을 이렇게 정
동그란 것을 못 먹는 후배가 있다. 사과, 배, 방울토마토, 앵두, 살구… 이 친구는 세상의 열매들이 얄밉기만 하다. 열매들은, 특히 과일들은 왜 모두 동그랗단 말인가. 하지만 이 세상의 열매들만 그런가. 사탕도, 과자도, 떡이나 빵 중에도 동그란 것은 수없이 많다. 다행히 그는 사과, 배, 방울토마토, 포도, 베리, 사탕, 초코볼들을 동그랗지 않게 잘라 놓으면 먹을 수 있다. 동그랗지 않으니까. 이해가 되는가? 특정 식재료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은 종종 보지만 특정 모양에 대한 공포 심리는 접하기 힘드니 이해가 가기 어렵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느 날 이유를 들어 보았다. 후배의 까마득한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 자매가 구슬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언니가 호기심이 발동해 동그란 구슬 하나를 동생의 코에 넣었다. 구슬이 콧속에 들어간 게 재미있어 더 깊이 밀어 넣는다. 아뿔싸, 너무 깊이 들어간 구슬이 이번엔 빠져나오지 않는다. 언니도 동생도 당황한다. 구슬을 빼내려 한쪽 코를 막고 안간힘을 써도 어떻게 처박혔는지 이놈의 구슬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더럭 겁이 난다. 자매는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한테 혼날 것도 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