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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시골에 도인이 산다

-노인과 도인

 

#1
도를 아십니까?
이런 난데없는 질문을 안 받아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에 대처하는 저마다의 방법들도 갖가지인데, 한때 유행했던 음주단속 대처법처럼 각양각색이다.


어물어물 상대와 대화하다가 실제로 도를 배우러 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적지 않으니 도 영업자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수업료가 황당했다는 경험자들을 종종 만난다.


중략하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은 ‘조상을 위한 제사를 올려 좋은 미래를 만들라’는 권유 같은 것이다. 지금 안고 있는 고통은 과거 조상들의 업보가 낳은 결과라는, 제법 그럴 듯한 이론에 기반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현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부모 역시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계속 이어진 것이니 조상을 잘 뒀느냐 못 뒀느냐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도를 아십니까는 도를 가르쳐주겠다는 제안이 아니라 조상을 바꾸는 제사로 귀결되는 것이다.


#2
도를 아십니까?
이 질문을 받고 인생이 바뀐 K의 사연이다. K는 그들에게 되물었다.
“도가 뭔데요?”


질문은 화근이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길어졌고 어딘가로 끌려(?) 걷는 형국이 되었다. 작은 골목으로 접어들 때 문득 K가 물었다.


“그런데 도인이 왜 서울에 살죠? 도인은 산골에 있잖아요.”


물론 산속에도 있지요, 하지만 불행한 도시민들을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그들의 설명은 이미 K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호하게 몸을 돌려 도인을 찾아 산으로 가겠다는 K를 2인조 영업자들은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K는 과연 도인을 찾아 산으로 갔을까? 그는 정말 도가 뭔지 궁금했고 도인이 정말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나 보다. 곧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 하고도 산골인 무주 구천동으로 이주했다.


#3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산골에서 도를 닦는 줄 알았던 K는 밭농사를 지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매년 재배품목을 바꾸며 허덕이다가 귀농 10년차쯤 되었을 때 마(麻)로 품목을 바꿔 천마농업인이 되었고 이제는 제법 안정이 되었다.


K에게 ‘도 닦으러 내려온 사람이 왜 농사를 짓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네 글자에 불과했다.
“이게 도요.”


그날 서울 종로에서 만났던 ‘도를 아십니까’가 준 영향도 덧붙여 설명했다.
“다 착한 사람들이지.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깊으니까 그런 관심도 가졌을 테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보니 노인들이 다 도인들이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들이 다 똑같은 것 같아도 똑같질 않잖아. 그것들이 계속 쌓이는 게 나이이고 지혜이고 지식이라고 생각해봐. 노인이 될수록 도인에 가까워지는 거지.”


그리고 죽음에 이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 보이고 더 이상의 지혜가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른다고, 그것이 바로 도라고, 도인처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