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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계란을 사러 갔다

-선택의 기준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마트에 계란을 사러 갔다. 여러 브랜드의 판란들이 쌓여 있는데 무엇을 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싼 것으로 살까, 비싼 것으로 살까. 첫 고민은 이렇게 가볍게 시작되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고민이 점차 심각해졌다. 가까운 동네에서 출하된 것으로 살까, 대기업 브랜드로 살까. 일반 계란으로 살까, 친환경이나 무항생제 표시가 된 것으로 살까. 유기농 계란이나 혹시 방사란도 있을까?


계란 매대 앞에서 번잡한 고민에 시달리다 아내에게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항생제 계란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기업의 것으로 손이 갔다. 빠른 걸음으로 귀가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계란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고민했네.”
계란 포장을 열어본 아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깨지고 비어 있고…”


한마디로 불량상품이었다. 난좌가 비어 있는 곳이 세 개나 있었고 껍질이 깨진 계란들도 몇 개 보였다. 바꿔 오라는 부인님의 명령을 받고 마트로 가면서 불만과 고민이 가중됐다. 기껏 고민해서 이미지 좋은 기업 것을 샀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그나저나 영수증을 안 챙겼으니 어쩐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블랙컨슈머도 많은 세상, 교환을 순순히 해주기나 할까? 책임 소재를 따지며 언쟁을 하게 되면 어쩌지? 그런데 불량상품의 책임 소재는 제조업체일까, 유통업체일까.


고민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다. 마트 직원은 두말하지 않고 교환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검품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하고 사과까지 했다. 새 계란을 들고 오는 마음이 가뿐해지며 머릿속도 맑아졌다. 유통업체 서비스가 선진화되었군. 친환경 식품 전문기업이라 유통 거래도 신사적으로 하나 보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불만과 불신과 의심투성이였던 마음이 신뢰와 만족과 기대감으로 돌변했다. 계란 한 판을 두고 북 치고 장구 치며 고민에 휩싸였던 것이 민망해지기도 했다.  


독일 여행 중에 시골 마을의 마트에서 계란 매대를 봤다. 비교적 단출하게 세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 가격대도 세 개로 일반 계란,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 방사란 순으로 제법 큰 차이가 있었다. 포장에 양계 농가의 가족사진과 농장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떤 것이 더 많이 팔리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진열 매대를 보고 추정할 수는 있었다. 깨끗한 농장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은 포장 계란 쪽이 쑥 내려가 있었다. 나는 세 종류의 계란을 모두 구매해 맛을 비교해 보기로 했고 엄숙하게 계란 프라이를 해 먹어보았다. 비교해 본 맛의 결론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건강 기여도 역시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환경과 무항생제 사육을 선호하고 권장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까운 식품 과학자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식품은 약이 아닙니다. 약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만 먹거리의 효과는 아주 천천히 일어나지요. 건강만이 목적이라면 줄기차게 건강기능식품을 먹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친환경 생산이 필요한 건 단순히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연환경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식품을 구매할 때 어떤 게 건강에 좋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떤 게 더 공익적일까를 고민하세요.”
계란 앞에서 고민했던 갖가지 내용을 떠올리니 찔끔 오금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