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매출 1조40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농기계 기업 ㈜대동이 5억 2,000만 원짜리 세네갈 공적개발원조(ODA) 중고트랙터 공급 사업을 낙찰받으면서, 이 사업을 준비해온 한국중고농기계유통사업협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동은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를 내세우고 있는 반면, 조합 측은 "대기업이 손댈 영역이 아니"라며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중고농기계조합은 이달 3일 이사장 명의 호소문과 조합원 공지를 동시에 공개하고, ㈜대동의 이번 입찰 참여를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초등학교 대회에 출전한 꼴"이라며 사업 양보를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입찰 분쟁을 넘어, ODA 사업에서 대기업의 중소 전문 영역 진입을 허용하는 공공조달 제도의 구조적 공백을 드러내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의 사업은 조달청이 발주한 '세네갈 중고 농기계 지원 및 수리센터 구축사업' 가운데 중고트랙터 10대와 정미기 8대 공급 건이다. 납품지는 충남 천안 한국농기계글로벌센터이며, 계약 금액은 약 5억 2,000만 원이다. 세네갈 현지 농업 기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ODA 예산 사업이다.
중고농기계조합은 조합 소속 20개 회원사를 대표해 '신진'을 응찰 기업으로 내세웠다. 조합 측은 "중고농기계의 가격 경쟁력과 자원 재활용 효과, 그리고 현지에서 한국 신제품 농기계로 이어지는 생태계 조성의 발판"이라는 판단 아래 적극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종 낙찰은 ㈜대동이 가져갔다.
대동의 논리 "아프리카 교두보"…조합의 반박 "생태계를 빼앗겼다"
㈜대동 측은 이번 낙찰에 대해 "향후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첫 발판으로 세네갈 ODA 사업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합 측의 시각은 정반대다. 김정현 이사장은 호소문에서 "연간 1조 4,000억 원의 신제품 매출을 올리는 ㈜대동이 5억 2,000만 원짜리 ODA 중고농기계 사업에 뛰어들어 얻는 실익이 무엇이냐"며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낙찰금액은 ㈜대동 연매출의 0.04%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합 측은 이번 세네갈 사업을 단순한 납품 계약이 아니라 중고농기계 수출 생태계 구축의 시범 사업으로 준비해 왔다고 강조했다. 현지에 중고트랙터를 공급하고, 이를 계기로 수리센터를 구축하며, 장기적으로 한국 신제품 농기계 수출의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대동이 꼽은 '아프리카 교두보'의 의미를 조합도 같은 이유로 소중히 여겼던 셈이다. 조합원들은 바로 그 기회를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업계 일각에서는 대동과 조합이 굳이 경쟁 구도로 맞설 필요가 있었느냐는 아쉬움도 나온다. ㈜대동이 '아프리카 교두보'라는 전략적 목표를 진심으로 품고 있었다면, 중고트랙터 공급을 조합과의 연대 방식으로 풀어가는 선택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동이 자사 중고트랙터를 중고농기계조합을 통해 공급하는 형태로 사업에 참여하되, 현지 수리센터 구축이나 사후 관리 같은 더 큰 그림의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이렇게 했다면 대동은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와 아프리카 진출 명분을 얻고, 조합은 중소 전문업체로서 사업 참여 기회를 지킬 수 있었다는 논리다. 대기업과 소기업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상생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낙찰에 이르기까지 사업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조합 측에 따르면, 애초 2025년 11월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 중고트랙터·정미기·원판쇄토기를 통합 입찰로 공고했으나, 중고농기계조합은 세네갈 현지 납품 조건이 붙은 원판쇄토기의 적정 공급선을 확보하지 못해 응찰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같은 해 12월 신진이 별도 응찰에 나서 서류를 보완하고 공개 발표·계약 체결까지 마쳤으나, 발주처 측이 관련 규정 문제를 이유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무효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민원이 제기되자 발주 주체는 조달청으로 이관됐고, 품목도 두 건으로 분리 재공고됐다. 이 재공고에 ㈜대동이 응찰해 낙찰을 받은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소업계에서는 ODA 농기계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원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에 일요일 의무 휴업을 적용한 사례를 들며, 중고농기계 ODA 사업에도 이에 준하는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공공조달 제도는 일정 규모 이하 사업에서 중소기업 참여를 보호하는 장치를 두고 있으나, 이번 ODA 농기계 사업은 해당 규정의 적용 대상 밖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기업이 응찰해도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던 셈이다.
조합 측은 "2014년 설립 이래 정부 지원 없이 자원 재활용과 농업생산비 절감이라는 소명 하나로 운영해온 중소 전문 업계가, 대기업의 단 한 번 응찰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동이 이번 입찰에 참여한 경위와 향후 계획에 대한 공개 해명, 그리고 조달청의 대기업 참여 제한 규정 검토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동과 조달청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