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화학’의 경계 무너진다…농약 혁신의 새 질서

  • 등록 2026.01.20 14: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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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글로벌 농약 신제품 중 절반가량이 생물 기반 제품
생물농약·화학농약의 ‘융합적 공존’…‘이분법적 구분’ 무력화
신젠타 TYMIRIUM® 기반 제품…‘화학’이지만 미생물 ‘무해’
FMC는 Sofero® Frugi 페로몬 제품… 아프리카에 첫 출시

지난해 글로벌 농약 산업의 신제품 등록·출시 흐름은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생물농약과 화학농약의 기술적 경계가 빠르게 해체·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AgPages 연례 보고서(2025)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농약 신제품 중 약 절반이 생물 기반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는 생물농약이 화학농약을 대체한다거나 화학농약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단순한 구조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이 무력화되며, 새로운 융합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택일’에서 ‘융합적 공존’으로 재편

 

생물농약은 더 이상 미생물 제제라는 전통적 틀에 갇혀 있지 않는다. 벨기에 바이오기업 바이오탈리스(Biotalys)의 EVOCA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제품은 AGROBODY™ 단백질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살균제로, 생물농약의 환경친화성과 화학농약 수준의 빠른 효과를 동시에 겨냥한다.

 

UPL의 Luminus 역시 기존 개념을 벗어난다. Flg22-Bt 펩타이드를 활용해 작물 자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외부 약제를 ‘뿌리는’ 대신 작물이 스스로 방어하도록 설계됐다.

 

더 주목할 흐름은 이른바 ‘바이오 친화형 화학농약’의 부상이다. 신젠타(Syngenta)의 TYMIRIUM® 플랫폼 기반 제품인 VANIVA®와 VICTRATO®는 화학물질이지만, 유익한 토양 미생물에 해가 없고 생물농약과 병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전통적 화학농약 기업들이 스스로 ‘화학’과 ‘생물’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항성 관리, ‘부가 기능’에서 ‘핵심 가치’로 부상

 

이러한 혁신 흐름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저항성 관리(resistance management)’의 위상 변화로 읽힌다. 과거에는 제품 설명서 하단에 덧붙는 부수적 요소였다면, 이제는 제품 가치 제안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신젠타의 PLINAZOLIN® 기술을 적용한 살충제 Vykenda®는 IRAC Group 30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작용기작(MoA)을 앞세워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UPL의 생물살충제 Lepigen® 역시 IRAC Group 31을 전면에 내세우며 “교차 저항성 없음”을 핵심 메시지로 삼았다.

시프캄 니치노(Sipcam Nichino)의 제초제 Click® Pro는 더 노골적이다. ‘글리포세이트·아트라진 저항성 잡초 관리’ 자체를 마케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기업들이 더 이상 저항성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장 기회로 전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역별 혁신 중심 이동…브라질 선두, 북미는 시험장

 

지리적 분포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브라질은 전체 신제품 등록·출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활발한 시장으로 부상했다. 대규모 농업 시장, 비교적 유연한 규제 환경, 심각한 저항성 문제라는 세 요소가 맞물려 “수요가 있고, 진입이 가능하며, 투자할 가치가 있는” 최적의 조건을 형성했다.

 

반면 북미 시장은 역할이 다르다. 새로운 작용기작 제품과 바이오기술 혁신이 가장 먼저 검증받는 무대 역할을 한다. 높은 기술 장벽과 엄격한 규제가 제품 경쟁력을 검증하는 일종의 ‘시험장’인 셈이다.

 

인도와 아프리카 시장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맞춤형 혁신이 나타난다. BASF의 Valexio® 살충제와 Mibelya® 살균제 조합은 ‘한 번의 살포로 종합 방제’라는 메시지를 통해 소규모 농가의 비용 부담을 겨냥한다. FMC는 Sofero® Frugi 페로몬 제품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먼저 출시하며, 현지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최우선 해충 ‘갈색거저리(밀월 성충)’ 공략에 나섰다.

 

‘생물’과 ‘화학’의 구분은 사라지고, 전략만 남는다

 

2025년 농약 산업 혁신의 핵심은 명확해 보인다. ‘생물’ 대 ‘화학’이라는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에 작용기작, 저항성 관리, 지역 맞춤 전략이라는 세 가지 축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농약 산업은 지금, 기술의 정체성보다 문제 해결 능력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농약·종자·바이오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글로벌 농약 산업의 새로운 흐름은 국내 농약·바이오 기업에도 분명한 전략적 과제를 던진다. 국내 관련산업 전문가들은 첫째, ‘생물 vs 화학’이라는 사업 구분 자체를 재검토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 다수는 여전히 화학 합성, 미생물 제제, 종자 사업을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운영하고 있지만,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기술과 포트폴리오를 융합 단위로 재편하고 있다. 생물농약을 ‘보조제’로, 화학농약을 ‘주력’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둘째, 저항성 관리 기술의 내재화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작용기작(MoA)을 확보하지 못한 제품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신작용기작을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유효성분에 생물 기반 기술을 결합하거나, 저항성 관리 스토리를 강화한 ‘포지셔닝 혁신’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순 가격 경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일침이다.

 

셋째, 종자·바이오 기업에는 ‘품종 × 보호 기술’ 결합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작물 면역 활성화, 페로몬, 생물활성제(biostimulant) 등은 종자 기술과 결합될 때 부가가치가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결국 국내 농약·종자·바이오 산업의 관건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묶는 전략적 설계 능력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어떤 조합으로 해결하는가’를 묻고 있다.

차재선 기자 cha60@newsf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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