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없는 농업?”. 물음표가 포함된 이 한 줄은 한 석학이 던진 제언의 핵심이었다. AI는 농부를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AI 없이는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난달 초 소노캄 경주에서 열린 한국농약과학회 춘계학술발표회의 첫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용환 박사(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현 지바이오컨설팅 대표)는 ‘AI시대와 작물보호산업에 미치는 영향 : 농업인 없는 농업?’이란 주제의 첫 슬라이드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농약산업 관계자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의 모골을 송연케 한 내용은 따로 있었다. 농약 회사들은 이제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가’를 홍보하는 대신, ‘농업인의 수익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김 박사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이 곧 ‘가치 증명’의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가 먼저 친다…수확량 붕괴의 경고
김 박사는 먼저 ‘무언가를 유지하는 것’, ‘현재의 필요성을 충족하고 미래세대가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Sustainability를 정의하고는 식량수요 증가와 작물 가격 및 농업 경제, 날씨, 재배면적, 경제 상황 등을 예로 들며 글로벌 작물보호 시장의 핵심 동향에 대해 주목했다. 기후변화와 소비자 주도의 화학 공포증, 규제 환경, 솔루션 등의 과제도 제시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숫자를 통해 부각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1°C 오를 때마다 밀 수확량은 평균 6.0%, 옥수수는 7.4%, 쌀은 3.2%, 대두는 3.1% 감소한다. 미국 과학원 회보(PNAS) 연구 결과다. 밀·쌀·옥수수·대두 네 작물이 인류 칼로리 섭취의 3분의 2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온의 상승은 곧 ‘식량 위기의 방아쇠’라는 경고다.

설상가상으로 기온 상승은 온도대를 극지방 쪽으로 약 150km씩 밀어 올린다. 병해충의 서식지가 그만큼 북상하고, 기존 농약이 효과를 잃는 저항성 병해충이 빠르게 늘어난다. 김 박사는 “과거 신약 개발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농약 개발이 더 느리고 더 비싸지는 ‘이룸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법칙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그가 지목한 것이 바로 AI다.
김 박사는 “‘AI가 이것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박사는 20세기 농업 혁명을 이끈 파괴적 기술로 노벨상 수상자 세 명을 꼽았다. △고수확 밀 품종을 육종해 ‘녹색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먼 볼로그(1970년 평화상) △공기 중 질소로 합성 비료를 만든 프리츠 하버(1918년 화학상) △살충제 DDT의 효능을 발견한 파울 뮐러(1948년 생리의학상)다. 이 세 가지 기술은 이미 현장에서 제각각 속도를 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역설…디지털화 덜 된 농업에 기회
맥킨지에 따르면, 농업은 현재까지 디지털화가 가장 미진한 산업 중 하나다. 역설적으로 이는 IT 인프라가 갖춰질 경우를 전제하면 다른 어느 분야보다 빠른 생산성 도약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박사는 하드웨어(드론·정밀 센서·스마트 관개)와 소프트웨어(기상 빅데이터·병해충 예측 모델·농장 경영 플랫폼)의 통합을 핵심 전환점으로 꼽았다. 이제 기계는 언어를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생성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가 단순히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협력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서비스형 농업(Farming as a Service·FaaS)’의 부상이 주목된다. 농업인이 장비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구독 혹은 사용량 기반으로 드론 방제, AI 진단, 빅데이터 컨설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델이다. 글로벌 서비스형 농업(FaaS, Farming as a Service) 시장은 2024년 47억 달러에서 2030년 117.8억 달러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병해충을 촬영해 AI 진단을 받고, 처방형 농약 추천까지 받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마케팅도 바뀐다…‘4P’에서 ‘SAVE 프레임’으로 전환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전환도 불가피하다. 김 박사는 제품(Product)·유통(Place)·가격(Price)·프로모션(Promotion)의 전통적 ‘4P 마케팅’이 솔루션(Solution)·접근성(Access)·가치(Value)·교육(Education)의 ‘SAVE 프레임’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제품중심적’ 접근방식에서 ‘고객중심적’ 접근방식으로의 전환이다.
농약 회사들이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가’를 광고하는 대신, ‘농업인의 수익성을 어떻게 높이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박사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이 곧 ‘가치 증명’의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AI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AI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이다. 이것이 핵심 요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