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농화학 산업의 인수합병(M&A)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규모가 경쟁력’이라는 인식 아래 몸집 키우기에 몰두하던 다국적 기업들은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며 전략적 축소에 나섰고, 인도 등 신흥국 기업들은 오히려 적극적인 인수자로 부상하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거래가 늘었지만, 산업의 무게중심은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groPages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농화학 분야 M&A 거래는 133건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이는 최근 3년 중 가장 많은 수치다. 그러나 업계는 이를 단순한 시장 회복 신호로 보지 않는다. 대형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하던 ‘확장형 M&A’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구조조정과 재편을 동반한 ‘선별형 M&A’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모자이크(Mosaic)는 캐나다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미국 뉴멕시코 칼륨 사업에서 철수했다. 뉴트리엔(Nutrien)은 아르헨티나 비료회사 프로페르틸(Profertil) 지분을 6억 달러에 매각했고, 바이엘(Bayer) 역시 일부 농약 제품 라인을 인도 기업에 넘겼다. 업계 관계자는 “이는 후퇴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라며 “산업 성장 속도가 둔화된 상황에서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보다 가장 경쟁력이 높은 분야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도 농화학 기업들의 인수 행보는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최근 3년간 인도 기업이 주도한 글로벌 인수 건수는 6건에서 20건으로 늘어 23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아누팜 라사얀(Anupam Rasayan)이 미국 정밀화학 기업 제이호크 파인 케미컬(Jayhawk Fine Chemicals)을 1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사례는 상징적이다. 신흥국 기업이 선진국 기술 기업을 사들이는 이른바 ‘역인수’가 현실이 된 것이다. 크리스탈 크롭(Crystal Crop), 코로만델(Coromandel), 다누카(Dhanuka) 등도 더 이상 피인수 대상이 아닌 글로벌 시장의 적극적 인수자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행보는 또 다르다. 중국 농화학 기업들은 해외 M&A를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도, 국내 시장 통합과 구조조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도와 중국의 전략 차이를 두고 “양국 농화학 산업이 서로 다른 성장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생물학적 제제 분야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스타트업 중심으로 형성됐던 바이오 농약 시장에 다국적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6%에 불과했던 다국적 기업의 바이오 분야 M&A 참여 비중은 2025년 14%로 급증했다. 신젠타(Syngenta)는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기업 인트린식스 바이오(Intrinsyx Bio)를 인수했고, 스미토모(Sumitomo)는 발렌트 바이오사이언스(Valent BioSciences)를 통합 브랜드로 재편했다. 이는 단순 유통 계약을 넘어 핵심 기술을 직접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생물학적 방제제가 과거 화학 농약 산업이 겪었던 통합 과정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고 본다. 초기에는 전문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개척했지만, 기술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기업이 이를 흡수·통합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2025년은 생물농약 시장이 ‘전문 기업의 난립’에서 ‘거대 기업의 수확’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화학 산업의 M&A는 여전히 활발하지만, 방향은 과거와 다르다. 대기업은 선택과 집중으로 체질을 바꾸고, 신흥국 기업은 기술과 시장을 사들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농화학 산업의 판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재편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