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계 이슈를 심층 분석, 저술하고 있는 김재민 농업전문기자(‘농장에서 식탁까지’ 편집장, 팜인사이트 대표)가 지난 세 번의 역사적인 개혁에도 ‘개혁되지’ 못한 농협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농협 개혁의 잔혹사>를 출간했다.
정부는 3번에 걸친 농협의 개혁을 통해 중앙회의 비대함과 중앙회장의 지나친 권력집중을 막으려 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1988년 조합장·중앙회장 직선제, 2000년 농·축·인삼협 통합, 2012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신경분리) 등에도 농협중앙회의 권력은 줄기는커녕 더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기자는 개혁의 대상을 바꿔야 한다고 강변한다. 개혁해야 할 것은 중앙회가 아니라 회원조합이라는 주장이다.
읍·면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지역농협과 시·군을 넘지 못하는 품목농협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일을 중앙회가 대신 떠맡으면서 중앙회는 커졌다. 그러니 이제 와서 또 중앙회를 개혁한다 해도 회원조합이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중앙회의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책에서 가장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은 ‘제12장 2012년 신경분리-잘못 휘두른 칼날’이다. 신용과 경제를 나눌 것인가는 2012년 처음 나온 질문이 아니다. 저자는 그 방어선을 지킨 것이 농민단체의 힘도 조합장의 결속도 아니었으며 소관부처인 농림부가 버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두 건의 인사가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농협의 향방을 걸정지었다고 분석한다. 2008년 7월 7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8월 6일 취임)과 그해 9월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의 농협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취임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구체적인 연표가 잘 말해준다는 것.
2008년 8월 장태평 장관 취임→9월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취임→2009년 농협개혁위원회 가동과 1중앙회·2지주 구상 공식화→2009년 12월 정부 최종안 확정→2010년 8월 장태평 장관 퇴임→2011년 1월 김석동 금융위원장 복귀→2011년 3월 농협법 정부개정안 국회 통과 →2012년 3월2일 새농협 출범.
저자는 이 연표 어디에도 농협의 의사결정 절차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농협은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라 협상의 대상, 더 정확히는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트로이의 목마’는 성문이 열린 뒤에도 성 안에 남았다고 비유했다. “신경분리는 농민에게 판매농협을 안겨주지 못했지만 모피아에게는 차관급 이상이 갈 수 있는 자리 하나를 새로 만들어주었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신경분리 13년의 성적표는 어떨까? 금융의 흑자로 경제사업을 떠받쳐 ‘판매농협’을 완성하겠다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금융지주가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동안, 경제사업은 더 깊은 적자로 가라앉았다.
저자는 그 분리가 애초에 면밀히 설계된 산물조차 아니었다는 증언을 전한다. 당초 구상은 금융 부문만 중앙회 자회사로 두는 것이었으나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직도의 균형’ 이야기가 더해지며 경제 부문까지 별도 지주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한편 2013년 농협금융의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는 ‘모피아가 모피아의 과제를 풀기 위해 농협의 돈을 동원한 사건’으로 분석한다. 인수는 성공했으나 그 자금은 조합원 농민의 출자금에서 출발한 돈이었다는 지적이다.
2026년 정부는 네 번째 농협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외부 독립 감사기관 신설, 농식품부 지도·감독권의 지주·자회사 확대, 인사추천위원회 외부위원 확대 등 명분은 ‘조합원 주권의 회복’이다.
저자가 2026년 개혁에 던지는 비판의 핵심은 ‘농협 정책의 PC주의’다. 정치적 올바름이 성과보다 도덕적 정당성의 외양을 앞세우듯, 농협 개혁 역시 “농민을 잘살게 하는가”를 묻지 않고 “나쁜 자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로 미끄러졌다는 것이다.
우선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게 하겠다면서 동시에 200만 조합원 직선으로 회장에게 가장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안기는 설계의 모순을 지적한다. 정부 감독권 확대가 1990년 어렵게 끊어낸 관치의 사슬을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채우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리는 사법과 감사가 단죄하면 될 일이지, 그것이 협동조합 자율성을 침해할 구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MBC ‘PD수첩’의 ‘비리 백화점’ 보도에 대해서도 감시 자체는 저널리즘의 본령임을 인정하지만, 200만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을 ‘재벌’ 프레임에 욱여놓고 비교 대상 없는 수치를 나열할 때 “보도는 감시가 아니라 단죄가 된다”고 반론한다.
저자는 비판에 이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5장에서 진정한 농협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
▲메가농협(Mega-Nonghyup) 전략 — 읍·면 단위로 파편화된 조합을 시·군 단위 이상으로 광역화한다. 지역농협은 시·군당 1~4개, 원예농협은 시·도당 1~4개를 원칙으로, 총사업 규모 3,000억 원 미만 또는 경제사업 비중 33% 미만 조합을 우선 대상으로 삼는 가칭 「농축협 통합 촉진 특별법」 제정을 제안한다. 현재 1,100여 개 회원조합은 520~630개 수준으로 재편되고, 그중 50여 개 선도 조합이 ‘메가농협’으로 떠오른다는 구체적 추정치를 제시한다.
▲옥상옥 경제지주 폐지와 지분 배분 — 경제지주를 폐지해 지원 기능을 중앙회로 통합하고, 농협금융지주의 소유 구조를 회원조합 70 : 중앙회 30으로 바꿔 금융 수익을 조합원에게 기본소득처럼 직접 배당하자고 제안한다. 광역화를 완료한 메가농협에 한해 금융 지분을 단계적으로 배정하면, 통합은 정부가 떠미는 구호가 아니라 조합이 스스로 택하는 경영 전략이 된다.
▲답은 이미 역사 안에 있었다 — 결정적 반증은 축협이다. 1980~90년대 시·군 단위 구조조정을 마친 축협은 회원조합이 강해지자 중앙회 축산 부문의 영향력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작아졌다. 도드람양돈농협은 13명·1.7만 두에서 출발해 자체 브랜드와 일본 수출을 일궈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 농협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일반 국민의 95.1%, 조합원의 94.5%가 찬성했다. 저자는 이 압도적 분노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분노만으로는 개혁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왜, 어떤 순서로 고쳐야 하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개혁이 된다”고 말한다.
국회 농해수위에서 농협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는 지금, 김재민 기자는 가장 구체적인 반론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협동조합 농장과 식탁 발행/팜커뮤니케이션 출간/신국판 232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