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화상병처럼 국내 농작물에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방제 대상 병해충’로 지정된 병원균을 대학·연구기관·기업이 시험연구와 방제약제 생산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식물방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달 17일 전체회의를 열어 서삼석 의원안(2025년 7월 25일 발의)과 김선교 의원안(2026년 7월 13일 발의)을 통합한 위원회 대안을 의결했다. 두 발의안은 앞서 9월 8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안 반영 폐기’로 정리됐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현행법 제31조가 ‘발견 즉시 폐기’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방제 대상 병해충에 대해 예외적 ‘이용 허가’ 제도를 신설(안 제31조의8)한 데 있다. 화상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같은 국산 생물농약이 개발됐음에도 민간이 이를 생산·판매하려면 병원균 자체를 다룰 법적 근거가 없어 막혀 있던 구조를 푸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26년까지 박테리오파지 제품을 등록하고 2027년부터 상용화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관련기사 2026.04.16. 「인터넷」 ‘과수화상병 국산 방제제 조기 상용화 추진...농과원, 선제적 적극행정으로 활로 찾는다’》
농진청은 이번 개정안의 국회 상임위 의결에 대해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이 방제 대상 병해충에 대한 방제 방법을 개발하고, 약제 국산화 등 시험·연구와 약제 생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 의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발견 즉시 폐기 원칙에 막힌 국산 방제제 개발
식물방역법은 국내 농작물에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병해충을 방제 대상 병해충으로 지정해 공적 방제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 목적의 이용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외국에서 발생한 병해충은 ‘수입금지품 수입 허가’ 제도를 통해 연구용으로 들여올 길이 있지만, 과수화상병처럼 이미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병해충은 채집·보존·배양의 근거가 모호했다. 방제약제를 만들려면 병원균이 있어야 하는데, 병원균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법적 회색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는 이와 관련해 “방제약제 개발 등 연구를 위해 병해충 이용이 필요하나 방제 대상 병해충 이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대학, 기업 등 연구 수행에 제약”이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연구·약제 생산 활용의 법적 근거 확보와 안전관리 체계 확립, 화상병 방제제의 국내 원천기술 확보와 산업화를 위한 관련 법(식물방역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세 가지 목적에만 허가…시설 밖 반출은 전면 금지
위원회안 제31조의8은 이용 목적을 세 가지로 한정했다. △방제 대상 병해충의 분류·진단 및 예찰·역학·소독·방제 기술 개발 등 시험연구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한 방제약제의 생산 △농업생명자원의 보존·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업유전자원 확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춰 농식품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리 규정은 촘촘하다. 누구든지 방제 대상 병해충을 허가받은 시설 밖으로 유출·반출할 수 없고, 위반 시 농식품부장관은 회수·폐기를 명해야 하며 허가 취소 또는 2년 이내 허가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용을 종료하면 해당 병해충을 모두 폐기해야 하고, 폐기하지 않으면 폐기 명령이나 공무원에 의한 강제 폐기가 뒤따른다. 허가 취소 처분은 청문 대상(안 제45조의3)에 추가됐다. 허가 절차와 방법, 보존·관리, 행정처분 세부기준, 폐기 방법은 농식품부령에 위임했다.

수입 병해충과 형평 맞춰 신고제서 허가제로
당초 서삼석 의원(농해수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무안·신안군)이 발의한 개정안은 ‘병해충의 연구’를 ‘신고’로 허용하는 구조였다. 지난해 9월 24일 상임위 상정 과정에서 나온 검토 의견이 법안의 틀을 바꿨다. 모든 병해충에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대상을 ‘방제 대상 병해충’으로 특정했고, 현행법이 금지품 ‘수입’에는 허가제를 두고 있어 국내 병해충 이용만 신고제로 하면 규제 수준에 차등이 생긴다는 지적에 따라 ‘허가’로 강화했다. 이용 자격과 허가 절차, 위반 시 제재·벌칙 근거도 이때 추가됐다. 연구시설 안전관리 기준은 시행령·시행규칙과 농진청·농림축산검역본부 고시로 정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이 검토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을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마련했고, 신속한 처리를 위해 김선교 의원(농해수위 국민의힘 간사, 경기 여주시·양평군)이 이를 지난 7월 별도 발의했다. 두 안을 하나로 묶은 것이 이번 위원회 대안이다.
농진청장 재위임 근거…무허가 이용은 형사처벌
권한 위임 조항(제46조)도 손질했다. 현행법은 식물검역기관의 장이 위임받은 권한을 소속기관의 장에게 재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 농진청장을 추가했다. 방제 대상 병해충의 연구·활용 관련 권한을 농진청 소속기관이 실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벌칙은 기존 제47조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조항에 세 가지 유형을 신설했다. 허가 없이 방제 대상 병해충을 이용한 자, 허가받은 시설 밖으로 유출·반출한 자, 폐기 명령을 위반한 자다. 병원균을 다룰 수 있는 문을 열되, 문 밖으로 새는 것은 형사처벌로 막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법사위·본회의 남아…시행령·고시 정비가 관건
위원회 대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의결과 본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된다. 농식품부는 법사위·본회의 심사에 대응하는 한편 이달부터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과 고시 제정안에 대한 관계기관 협의에 들어간다.
하위법령에 담길 내용은 법률이 위임한 사항 전부다. 대통령령으로는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자의 요건을, 농식품부령으로는 허가 절차와 방법, 허가 대상 방제약제, 병해충의 보존·관리, 행정처분 세부기준, 폐기 방법을 각각 정해야 한다. 여기에 상임위 검토 과정에서 요구된 연구시설 안전관리 기준이 농진청·검역본부 고시로 마련된다.
농진청은 이용 허가 요건·절차, 안전관리시설 기준, 회수·폐기 및 취소 등 세부기준을 마련하면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수입금지품 수입 및 사후관리요령’ 등 기존 관리 기준을 참고하기로 했다. 외국산 병원균 수입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관리 틀을 국내 병원균 이용에 준용하는 방식이다.
농진청은 이번 개정의 파급효과로 방제 대상 병해충의 연구·약제 생산 등 활용에 대한 법적 근거 확보와 안전관리 체계 확립, 화상병 방제제의 국내 원천기술 확보 및 산업화 기여 두 가지를 꼽았다. 병원균을 다룰 길을 열어 주는 것과 그 병원균이 새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두 축이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법이 공포되고 하위법령이 갖춰져야 실제 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농진청이 ‘적극행정’으로 고삐를 조여온 박테리오파지 제품 등록(2026년)과 상용화(2027년) 일정은 이 하위법령 정비 속도와 맞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