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농약 등록 규정을 완전히 새로 썼다. 중국 농업농촌부(MARA)는 지난달 중순 ‘농약 등록자료 요건(Data Requirements for Pesticide Registration)’의 전면 개정판과 조항별 신구 대비표를 공개했다.
최근 수년간 이뤄진 중국 농약 등록자료 제도 개편 가운데 가장 큰 폭의 변화다. 중국 농약 등록제도의 무게중심도 ‘동일성 증명’에서 ‘품질 하한 관리’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 농자재 시장을 꾸준히 분석해온 얼윈 쉬(Erwin Xue)와 엘사 완(Elsa Wan)은 최근 해설 기고에서 이번 개혁의 핵심 철학을 “진짜 혁신은 보호하되 ‘팔로워’의 진입 문턱은 대폭 낮추고, 행정 부담은 줄이되 품질과 안전의 마지노선은 지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방향은 8가지 핵심 조항 변화로 구체화 됐다. [표1]
그 밑바탕에는 중국 농약 등록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는 세 가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일성 증명’ 대신 ‘품질 하한’만 관리
과거 중국의 농약 등록제도에서는 비용을 아끼려는 후발 기업이 이미 등록된 제품과 유효성분뿐 아니라 불순물 프로파일과 결정형, 심지어 생산공정까지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동일농약(identical pesticide) 판정 절차가 사실상 후발 기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새 제도는 이 같은 경로 자체를 없앴다. 신규 화합물이 처음 등록된 뒤 6년의 보호기간이 지나면, 새로 신청하는 기업은 더 이상 기존 제품과의 ‘동일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대신 자사 제품의 품질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최고 제품보다 낮지 않다는 점과 실제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기존 최고 등록 함량 이상을 유지하고, 해당 생산허가를 보유하면 된다.
이 변화는 후발 기업의 시장 진입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기존 제품과 세부적인 특성을 일일이 대조하는 데 들던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품질 하한선’을 설정함으로써 저품질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는 유지된다.
유사 제형은 안전성 재입증 부담 감소
과거에는 사실상 동일한 제형(製劑·formulation)이라도 사람과 작물, 환경에 안전하다는 점을 다시 입증하기 위해 독성·약효·환경 시험을 새로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새 제도의 논리는 다르다. 유효성분과 함량, 제형 유형이 모두 같다면 안전성은 이미 한 차례 입증된 것으로 보고, 후발 신청 기업은 자사 제품이 동일한 기준으로 생산됐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이에 따라 제품 품질이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제품화학 시험만 요구되고 독성·약효·환경 시험은 면제된다. 의약품 분야의 제네릭 일치성 평가(generic-drug consistency evaluation)와 닮은 방식이다.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성분이나 제형에 대해 동일한 시험을 반복하기보다 품질 동등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다.
등록비용도 크게 낮아진다. 유사 제형 등록비용은 기존 수십만 위안대에서 6만~10만 위안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등록에 필요한 시험 부담과 비용이 동시에 줄면서 후발 기업의 시장 진입이 쉬워질 수 있다. 반면 유사 제품이 한꺼번에 늘어날 경우 유통 단계에서 가격과 판촉 경쟁이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표2]

등록자료도 이제 ‘라이선스’ 거래 시대
이번 개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등록자료의 활용 범위다. 새 규정은 ‘이전받은 등록자료를 이용한 농약 등록 신청’을 명시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수출 전용 등록자료는 이전할 수 없다는 예외가 있다.
이에 따라 규모가 작은 기업은 대기업에 보유 등록자료를 라이선스로 제공하고, 대기업은 이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신규 등록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중국에서 수년간 등록자료를 축적했지만 더 이상 독자적인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 없는 외국 기업 역시 등록자료라는 자산을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만 등록자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과 등록증 자체를 사고팔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합병이나 기업 분할에 따른 등록증 소유권 변경은 기존 ‘농약등록관리방법(Measures for Pesticide Registration Administration)’에 따른 별도 절차를 그대로 적용한다.
외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5가지 변화
얼윈 쉬와 엘사 완은 외국 농약기업이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6년의 데이터 보호기간이다. 신규 화합물에 대한 6년 보호기간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기간에는 다른 기업이 ‘비동일 원제(technical)’ 경로로 진입할 수 없으며, 권한을 받은 자료를 사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전체 시험 패키지를 완료해야 한다.
둘째는 원제 등급 생산허가다. 새 규정은 원제 등록 신청에 해당하는 생산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순수 무역회사나 등록증 확보만을 노리는 ‘페이퍼’ 법인이 원제 등록을 얻기는 한층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중국 현지 공장에 위탁생산을 맡기려는 외국 기업이라면 파트너가 적법한 생산허가를 갖췄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셋째는 유사 제형 등록이다. 등록비용이 크게 낮아지는 만큼 유사 제형은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급행 차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견고한 진입장벽을 만들려면 제형 혁신이나 새로운 복합제 조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넷째는 등록자료 라이선스 정책이 인수합병(M&A)의 가치 평가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현지 기업을 인수해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 지분·자산 거래 자체를 통해 등록증을 확보하는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인수 이후 대상 기업이 축적한 등록자료를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유연하게 특허권 사용을 허가 할 수 있다는 점은 부가가치가 될 수 있다.
다섯째는 생물농약이다. 이번 개편은 식물성(botanical)과 미생물(microbial) 제품을 동일한 잣대로 완화하지 않았다. 식물성 농약과 미생물 농약의 규제 경로를 구분하고 제품 특성에 따라 요건을 달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생물농약은 ‘일괄 완화’ 아닌 ‘표적 완화’
식물성 농약은 C군 제품이 가장 큰 규제 완화 혜택을 받는다. 6년 보호기간이 지난 C군 식물성 원제는 대체로 기본자료와 제품화학 자료만으로 등록이 가능해지고 독성시험 요건도 크게 줄어든다. 반면 A군 신규 농약은 기존에 있던 ‘식품첨가물’ 경로의 독성시험 면제가 삭제됐다.
미생물 농약은 전면적인 규제 완화보다는 기존 틀을 대체로 유지한다. 주요 변화로는 유효성분 명칭의 표준화, 저독성·극저독성 원제에 대한 일부 잔류자료의 조건부 면제, 조류(藻類) 생장 영향 시험 항목의 신설 등이 꼽힌다. 미생물 원제는 여전히 A군과 C군만 적용되며 데이터 권한을 허여(許與)받는 B군 경로는 없다.
결국 이번 개편의 방향은 모든 농약에 일률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제품군별 위험성과 특성을 따져 규제 강도는 달리하고, 이미 안전성이 확인된 분야에서는 반복적인 자료 제출을 줄이는 ‘차별화된 관리와 표적화된 완화’에 가깝다.
수치로 보는 중국 농약 등록제도의 변화
이번 개편의 핵심은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신규 화합물의 데이터 보호기간은 6년으로 유지된다. 반면 유사 제형 등록비용은 기존 수십만 위안대에서 6만~10만 위안대로 크게 낮아진다. 등록 갱신 때 제출해야 하는 보고 항목도 5개 범주에서 3개 항목으로 줄어든다. 시장 진입에 필요한 비용과 행정 부담은 줄이면서도 품질 관리의 기준은 유지하겠다는 방향이 뚜렷하다.
이 같은 변화는 등록비용 인하와 동일성 입증 부담 완화에 따라 후발 기업의 진입을 늘리는 동시에, 신규 화합물에는 기존과 같은 6년의 데이터 보호를 제공해 혁신 기업의 독점적 기회도 보장하는 이중 구조로 풀이된다.
제조 역량 없는 ‘등록증 장사’ 더 어려워져
얼윈 쉬와 엘사 완은 이번 개편의 또 다른 특징으로 제조역량을 중시하는 정책 방향을 꼽았다. 두 전문가는 “중국은 진짜 제조역량을 갖춘 기업은 환영하지만, 등록증 자체를 노리는 투기적 행태는 더 이상 반기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등록 절차 자체는 간소화하지만, 실제 생산이 가능한 기업인지 확인하는 장치는 강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원제 등록에서 생산허가를 요구하는 것은 등록증만 확보한 뒤 시장에서 되파는 방식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효과가 있다.
글로벌 농약업계에는 이번 개편이 기회이자 도전이 될 전망이다. 중국 시장의 진입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기회다. 특히 이미 검증된 제형이나 생물농약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는 새로운 진입 경로가 열렸다.
하지만 경쟁자가 늘고 유사 제품이 빠르게 늘어나면 가격 경쟁이 심화돼 이윤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결국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요소는 ‘등록증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에서 ‘실제로 어떤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차별화하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새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합법적인 제조역량을 갖추는 동시에 유사 제형 시장에서 기술과 브랜드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기업이 이번 제도 전환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게 두 전문가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