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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뉴스

농약 혁신 다음 무대는 ‘신규물질’ 아닌 ‘똑똑한 원제’

신규 유효성분(원제) 개발…천문학적 비용·규제 장벽에 막혀
업계, 기존 성분(원제)의 ‘L-이성질체 농축’으로 효율 극대화
중국, ‘메톨라클로르’ 전환 성공 이어 글루포시네이트로 확산

수십 년간 농약 산업에서 ‘혁신’은 곧 새로운 유효성분(신규 원제)의 개발과 상업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업계에서는 신규 물질(원제)을 만들어 내는 대신, 이미 농가에서 널리 쓰이는 기존 화합물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혁신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농약 포트폴리오 관리 전문가인 라파엘 고메스(Rafael Gomes)는 최근 AgNews를 통해 “이성질체 농축(isomeric enrichment) 기술이 약효 향상과 물류 최적화, 나아가 농자재 경제성 개선의 수단으로 글로벌 작물보호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메톨라클로르(Metolachlor)에서 ’S-메톨라클로르(S-Metolachlor)’로의 전환이다. 유효성분(원제) 안에서 생물학적으로 활성이 높은 이성질체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제조사들은 새로운 유효성분을 만들지 않고도 제초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비선택성 제초제 중 하나인 글루포시네이트암모늄에서 그 움직임이 현실화하고 있다.

 

‘메톨라클로르’의 교훈…‘이성질체’에 주목하다


일부 화합물은 화학적 조성은 같지만 입체 구조가 다른 여러 형태, 즉 ‘이성질체(isomer)’로 존재한다. 같은 분자식을 갖더라도 이성질체에 따라 생물학적 활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글루포시네이트의 경우 L-이성질체가 제초 활성을 담당하는 ‘생물학적 활성 분율’로 알려져 있다. 이성질체 농축이란 바로 이 활성 성분의 농도를 높여 분자 전체의 효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존 글루포시네이트는 활성이 높은 L형과 상대적으로 활성이 낮은 D형이 약 50대 50으로 섞인 ‘라세미 혼합물(racemic mixture)’이다. 반면 ‘P-글루포시네이트’는 활성 분율인 L-이성질체의 비중을 높인 제품으로, 같은 방제 효과를 더 적은 사용량으로 달성한다. 그 결과 살포 물량과 저장 부피, 물류 부담이 모두 줄어든다.

 

 

효능을 넘어서는 파급력…신규 물질 더 비싸진다


고메스(Rafael Gomes)는 이성질체 농축의 의미가 단순한 화학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본다. 그는 이 기술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산업 생산 효율 △제품 제형 △저장 및 유통기한 관리 △국제 운송 △유통 물류 △영농 현장 작업 효율 등이 그것이다.


기술적 권고와 대상 잡초, 살포 조건에 따라 농축 제형은 농약학적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작업 물량 자체를 줄일 수 있다.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 공급망 최적화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시점에서 이는 적지 않은 장점이다.


이런 흐름은 작물보호 분야의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신규 유효성분을 발굴하는 일은 갈수록 비싸지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전 세계적으로 더 엄격한 규제 심사를 받게 됐다. 이에 기업들은 기존 화학물질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대안적 혁신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고메스는 “혁신이 늘 신규 물질을 만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많은 경우 혁신은 기존 물질(원제)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이 농업용 유효성분의 최대 생산·수출국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게를 갖는다. 검증된 농약 원제를 둘러싼 기술 발전은 향후 투자 결정과 생산 전략, 나아가 업계 전반의 경쟁 구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성질체 농축이 농약 혁신의 주류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일부 제품에 국한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이르다고 말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업계가 검증된 기술에서 더 큰 성능을 뽑아내는 데 점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발 비용 상승과 지속가능성·효율성에 대한 요구가 동시에 커지는 지금, ‘더 똑똑한 원제’는 ‘새로운 원제’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