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비선택성제초제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을 둘러싼 공방(소송)의 방패막이였던 농업법안의 농약 제조업체 ‘면책 조항’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비선택성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는 지금 두 개의 질문 사이에서 갈라져 있다. ‘암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인가’와 ‘현대 농업을 떠받치는 필수 자원인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바이엘 같은 화학 대기업도, 수백만 농가도, 암 환자와 그 가족들도 모두 이해당사자가 된다. 미국 하원이 이번에 내린 결정은 그 오래된 갈등에 작은 불씨를 더 얹었다.
외신(Ag News)에 따르면, 미국 하원이 농업법안(팜빌)에 포함된 농약 제조업체 ‘면책 조항’을 초당파적 의결로 삭제했다. 이에 법안 자체는 하원을 통과해 상원으로 넘어갔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면책 조항은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 이번 결정은 ‘MAHA(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연대의 실질적 입법 영향력을 처음으로 확인시켜 줬다. 그 이면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번 농업법안엔 농약 제조업체가 EPA(환경보호청)가 승인한 라벨 기준을 초과하는 표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사실상 각 주(州)의 독자적 농약 규제권과 법원의 배상 판결을 연방 차원에서 차단하는 구조였다.
비판론자들은 이 조항이 독일 제약사 바이엘을 겨냥한 ‘맞춤형 면책’이라고 규정했다. 바이엘이 인수한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에 함유된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한다는 수천 건의 소송에서 법원이 잇따라 바이엘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왔기 때문이다. 글리포세이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다.
EPA는 글리포세이트를 발암물질로 분류하지 않고 있으며, 암 위험을 경고하는 라벨 표시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이 물질을 “인체 발암 가능성 있음(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으로 판정했다. 이런 대립된 두 주장이 수년째 소송전의 불씨가 돼왔다.
MAHA의 반란…초당파적 연대로 ‘면책 조항’ 삭제
이번 ‘면책 조항 삭제’를 이끈 것은 공화당의 애나 폴리나 루나 의원(플로리다)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선 첼리 핑그리 의원(메인)이 가세해 “이 조항은 대형 농기업과 화학업계에 대한 특혜이며, 주의 농약 규제권과 표시 의무를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하원 본회의에서 “이 언어는 화학회사의 이익을 미국인의 건강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이번 표결은 MAHA 연대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기반으로 형성된 이후, 실제 입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로 꼽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MAHA의 주장과 정반대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글리포세이트 생산을 공개 지지했고, 최근에도 대법원에서 바이엘 측 논리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MAHA 연대와 백악관의 노선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바이엘과 농업계의 반발…“농가에 심각한 타격”
바이엘은 하원 표결 직후 성명을 내고 “의회가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미국 농업인들에게 등을 돌렸다”고 비판했다. 면책 조항이 없으면 주마다 다른 기준이 난립해 규제 혼선이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원 농업위원장 G.T. 톰슨 의원도 “조항 삭제는 농업인에게 심각한 타격”이라며 반발했다. 그는 면책 조항이 “근거 없는 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실제 불법 행위자는 여전히 소송 대상이 된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 의원은 법안 자체의 통과는 “농업인, 목축업자, 산림업자, 농촌 공동체 모두를 위한 승리”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지난한 소송전 ‘끝?’…‘공’은 상원 판단에 달렸다
어쨌거나 첫 번째 ‘공’은 상원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전선은 이미 세 곳에서 동시에 형성됐다. 그래서 이번 하원 표결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첫째는 상원이다. 하원에서 삭제된 면책 조항이 상원 심의 과정에서 되살아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농업 주(州) 출신 상원의원들의 영향력은 하원보다 강하고, 바이엘과 농화학 업계의 로비도 상원을 향해 집중될 전망이다. 면책 조항이 다른 이름과 형태로 법안에 재삽입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남아 있다.
둘째는 대법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바이엘의 손을 들어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EPA의 안전성 판정을 우선해 주(州) 법원의 배상 판결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입법이 아닌 사법 경로를 통해 사실상의 면책 효과가 실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원에서 부결된 조항이 대법원 판결로 우회 관철되는 역설적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셋째는 정치 지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글리포세이트를 공개 지지하고 바이엘 편에 선 반면, MAHA 연대는 이번 표결에서 반대쪽에 섰다. 같은 트럼프 지지 기반에서 출발한 두 세력이 식품·농약 규제 문제에서 정면충돌하는 구도는 미국 보수 진영 내부의 균열을 드러낸다. 이 갈등이 심화할수록 글리포세이트 규제는 단순한 과학·보건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정체성 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크다.
결국 미국의 글리포세이트 미래는 어느 한 기관의 결정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 세 축의 힘겨루기 속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엘에게는 수십억 달러의 소송 부담이, 농가에게는 영농 비용과 규제 불확실성이, 그리고 수백만 소비자에게는 밥상 위 안전의 문제가 그 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