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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눈, 이슬에 대하여

-겨울 가고 봄 오고


#1
프랑스에서 살다 온 시인이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이 설마 밥을 표현하는 영단어를 모를 리 없을 터라 눈을 껌벅이며 질문의 의도를 헤아렸다. ‘밥’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우리가 먹는 밥’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세 번쯤 껌벅껌벅 하고 나서 대답했다.


“글쎄요.”
“그렇죠?”
하고 그가 동감을 표했다. 이게 무슨 대화지? 하고 또 눈을 껌벅껌벅했다.


“푸드(Food)나 밀(Meal)은 우리의 밥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라이스 푸드(Rice Food)? 보일드 라이스(Boiled Rice)? 다 이상하잖아요. 아이구, 힘들어 죽겠네. 뭐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별게 다 죽을 일이네, 하고 뜨악해 하다가 문득 시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헤아리게 되었다. 듣자니 한국의 음식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밥’을 설명하기가 힘들었나 보다. 김치, 고추장, 불고기, 비빔밥 등등의 음식은 설명하기 어렵지 않은데, 정작 중요한 밥이 난감했다고 한다.


“밥은 밥이죠 뭐. bob, 이상한가? 이상하군요.”
“그렇죠?” 외국인들과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텐데, 그들이 다 똑같은 고민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그 답을 찾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고 지구의 평화는 유지된다, 고 위로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같이 괴로워하기로 마음먹었다.


#2
눈이 펄펄 내린 날,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과 신사’ 사진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사달라는 노숙인에게 외투와 장갑과 5만원을 건네주는 신사. 사진 한 장의 힘이 그렇게 세지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의 공감 때문이다. 아니, 커피 한 잔 사달라는데 왜 외투를 벗어주지? 노숙자가 원한 건 커피 아녔어? 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아니다, 있을지도 모른다).


2021년 1월 18일 오전 10시 31분 12초~46초까지 셔터를 마구 눌러 27장을 찍었는데 그나마 핀이 맞은 것은 몇 장 되지 않았다고 사진기자가 후일담으로 밝혔다. 가끔, 그런 사람 기자가 나올 때가 있다. 그는 자신의 출입처를 아스팔트라고 밝혔다. 


#3
노숙자의 영어 표기는 Homeless People(person)이다. 아주 쉽다. 집 없는 사람, 집이 없어 길에서 자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자로는 路宿者라 쓰지 않고 露宿者라 쓴다. ‘길에서 자는 사람’이 아니라 ‘이슬 맞고 자는 사람’이란 의미다. 노점상도 路가 아니라 露店商으로 쓴다.


밥집을 파는 식당을 백반집이라 하는데, 이 백반을 百飯이라 쓰고 ‘반찬 많은 밥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맞는 말은 白飯이다. 흰밥, 쌀밥을 뜻한다. 백반집은 ‘쌀밥 파는 식당’이니 (백반집에 왜 반찬이 적냐고 따지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반찬은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눈, 밥, 노숙자가 한데 엉켜 상념을 만드는 이유. 춥다가 따뜻해지고, 우울하다가 상쾌해지고, 절망스럽다가 희망적이곤 하는 그런 세상. 추운 날보다는 따뜻한 날이, 우울한 날보다는 상쾌한 날이, 절망적인 날보다 희망적인 날이 더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