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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포장마차 할머니

-거리의 장인이 말했다


꽃구경하러 나갔다. 날 좋은 주말, ‘방콕’은 사방 천지에 만개한 꽃을 모독하는 행위라 생각했다. 노천 담을 타고 흘러내리는 개나리꽃들, 개인주택 담장을 끼고 뚝뚝 떨어져 피어 있는 목련꽃들, 도로 양편에 죽죽 늘어선 벚꽃들의 화사함을 보면서 잠시나마 코로나19가 만든 암울함을 떨쳐 버렸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걷고 지나쳤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생각으로 꽃을 보고, 비슷한 생각으로 걸으며 걱정을 덜어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모두 그랬을 것이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꽃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나왔으려니 생각했다. 간만에 얻은 풍경의 쾌감은 금세 끝나 갔다. 햇살은 힘을 잃고, 기온은 떨어지고, 어둠이 밀려오고, 거리의 사람들이 줄어드는 과정이 마치 코로나와 경제위기를 닮은 것 같았다.


포장마차 들어갔다. 벚꽃 거리의 한켠에 줄줄이 늘어선 포장마차는 일곱 개 정도 됐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포장마차마다 꽉꽉 들어찰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흥은 덜 났지만 분위기는 한적해 나름 술맛이 살아났다.


“포차 메뉴는 늘 같군요.”
오돌뼈와 닭똥집을 주문하며 말했더니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할머니가 “그러니까 포장마차죠.” 하고 답했다. 소주 몇 잔을 마시며 주인의 신상을 털었다. 음식을 만들면서 띄엄띄엄 아무 질문에도 편하게 대답해 줬다. 가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는 포장마차 할머니의 인생사를 띄엄띄엄 옮기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40년 됐수. 요 앞에서 시작해서 여기 자리 잡은 건 25년 됐고. (40년 간 한 장사라… 놀라워하면서 엄청 부자가 되셨겠네요, 하고 추임새를 넣었더니) 그렇다면 그렇고… 이거 해서 애들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발 뻗고 잘 집을 장만했으니 부자이지. (댁은 어디인지 물었더니) 여기서 슬슬 걸으면 10분, 20분 걸릴까. 시집 와서 평생 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수. 여기 포장마차들 중에 내가 제일 오래 됐지. (40년 동안 늘 같은 모양, 같은 메뉴, 같은 술, 같은 시스템인데 가격만 올랐네요, 하고 넌지시 꼬집었더니 달라진 것들을 몇 가지 알려 준다) 구청에 등록을 해서 허가를 내서 하고, 식재료들 주문만 하면 딱딱 배달돼 오는 게 달라졌지. 그리고 손님들이 달라졌소. 옛날에는 외상손님, 단골손님, 가족 같은 손님들이 많았지.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았는데 다들 어디서 뭘하며 사는지…”


40년 포장마차를 해온 거리의 장인이 옛사람들을 떠올리며 은근 미소를 짓는다. 옛사람 중에 특별한 이들이 떠올랐을 것이고 그 중에는 나름 연인 같았던 이도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하며 우동을 시켰다. 굵은 우동가닥에 깨소금과 고춧가루 듬뿍, 검정 김이 숭숭 떠있는 국물을 보며 식욕이 새로 돋았다. 그래요, 바로 이맛이네요, 너무 맛있습니다, 떠벌이며 후루룩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어려운 시기,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인사하고 나오는데 할머니의 말씀이 들려왔다.


“다 지나간다우.”
찡하게 등을 뚫고 가슴으로 뚫는 한마디, 동행자도 심쿵했는지 꽃을 보며 말했다.
“꽃보다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