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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용 칼럼

정부, 토종기자재산업을 살려야 한다

갈수록 농기자재를 둘러싸고 농협과 농기자재산업, 유통업자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외국산 제품들은 스멀스멀 우리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완전자급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한계 상황을 넘게 되면 우리 토종제품과 산업은 무너질 것이다. 이제라도 토종 농기자재산업과 농협, 정부는 한자리에 모여 장기적인 산업육성과 농민보호를 위해 숙의해야 한다. 정부 내에 농기자재 종합 조직(Control Tower)의 결성과 활동을 요청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농협은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정책 이행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직이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들을 시행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 농업정책은 돈과 관계되고 이 돈을 농협을 통해 집행, 관리하였으며, 정책자금으로 운용된 일부는 농협으로부터 빌려 사용하기도 하였다. 농업발전 초창기 전국 단위 농산물의 수집과 판매 역시 농협이 아니고서는 조직적으로 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농산물의 생산지와 소비지 간의 지리적 거리와 정보의 차이에서 오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구사되었고 이를 협조적으로 지원한 조직이 바로 농협이다.


농사에 필요한 각종 농업용 기자재의 공급과정에서도 농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1960~1980년대에 걸친 각종 농기자재의 공급에 농협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농산물 생산증대를 위한 농기자재의 적기 공급과 함께 공정한 가격의 형성을 위해서 농협은 나름대로 역할을 이행해 왔다. 비록 1988년 이후 농기자재 시장 자율화가 선언되었지만 고착된 공급시스템에서 농협의 역할은 여전하다.


농협의 다양하고 깊숙한 활동과 강한 위상은 법에 의해 정립된 목적에 기반을 두고있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 농협의 목적을 보자.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적어도 농업과 농민에 관련된 긍정적 목적의 모두를 위하는 조직으로 자리 매김되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농업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농기자재 산업과의 관계가 불편하다. 과거 농협과 농기자재산업은 농업을 지원한다는 공동체적인 인식아래 협동적인 자세와 대응들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이야기가 나오면서가 아닐까 여겨지는데, 농협과 농기자재 산업은 갈등의 관계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농협은 법에 명시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한다고 주장한다. 당초의 목적을 위해 활동을 한다는데 누가 시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농협의 시장 행위에 대한 농기자재산업의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비근한 예로 남해화학 비료 대리점들에 대한 갑작스런 대리점 재계약 일괄 거부, 아니 해지라는 사건이 있다. 유통마진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데 주변 파급영향은 고려되었는지 알 수 없다. 농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최저가 입찰은 수년에 걸쳐 갈등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예정가격을 설정하고 경쟁입찰을 했다고 하지만 본질은 과거와 같다는 평가이다. 물론 농협은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농약가격의 일괄적인 인하 압박도 농협과 관련회사의 갈등을 야기하는 불쏘시개이다. 직관적이지만 갑의 농협의 거칠 것 없는 행보에 을인 농기자재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농협의 농기자재 시장 영향은 수요자독점적 행위
농협에 의한 농기자재 산업과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농기자재가격 통제와 시장 확장은 수요자 독점적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제제가 없다. 법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이다. ‘농업협동조합법’  제 12조(다른 법률의 적용 배제 및 준용), 제2항의 8과 9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조항을 요약하면, 농협경제지주회사 및 그 자회사(손자회사 포함)의 당초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행위는,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이외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와 23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행위의 당사자에 농협경제지주회사 및 그 자회사, 중앙회, 조합 등 외의 자가 포함된 경우와 해당 행위가 일정한 거래분야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만이 예외이다.


그런데 위 조항은 2014년 12월 31일에 신설되었다. 2012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신경분리가 결정되고 이후 2년간 지지부진했었다. 2014년에 들어 여기저기 질타와 방안 등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제사업부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의 한 방법으로 이 법 조항, 즉 거의 모든 사업에서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는 법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추정된다.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 조항은 농협중앙회에는 날개를 농기자재산업에는, 현 시장과 유통구조 하에서,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 특히 농협중앙회가 농약과 비료회사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농협과 농기자재산업, 유통조직 간에 갈등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농업은 갈수록 자주성이 훼손되고 있다. 기초체력과 체급상의 차이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농산물을 우리가 만든 기자재의 후원을 받아 100%로 생산, 소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부분 우리의 손으로 자급하려는 것은 국가 경제에서의 위상뿐만 아니라, 농업의 자주성 확보, 우리 농업과 농기자재산업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수혜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종자와 비료, 농약과 농기계, 스마트 농업 구현 첨단 기자재를 외국산에 의존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왜 우리가 국내 토종산업을 살려야한다고 주장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농기자재를 둘러싸고 농협과 농기자재 산업, 유통업자 사이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외국산 제품들은 스멀스멀 우리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완전자급은 불가능하기에 어느 정도 외국산의 수입과 국내 판매는 용인이 된다. 하지만 어느 한계의 상황을 넘게 되면 우리 토종제품과 산업은 무너질 것이다. 농협과 토종 농기자재산업, 정부가 각각의 기관차를 몰고 각자의 방향으로만 가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결과, 서로 삿대질만 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토종 농기자재산업과 농협, 정부는 한자리에 모여 장기적인 산업육성과 농민보호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숙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빠른 시간 내 정부 내에 농기자재 종합 조직(Control Tower)을 만들고 허심탄회하게 책임자급들을 모아서 협의해야 한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들이 모이고, 진정한 우리나라의 미래, 농업과 농민, 둘러싼 조직들의 안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한다. 정부, 농협, 농기자재 산업과 유통조직에 간곡하게 요청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